11일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7년 만에 인천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송도캠퍼스를 전격 방문한 것은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해 미래 먹거리의 주축으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처럼 복합 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하는 상황에서도 10년간 7조 5000억 원이라는 대규모 투자 결단을 내리면서 위기를 거꾸로 ‘초격차’의 기회로 삼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계에서는 그가 회장 자리에 공식 취임한 뒤에는 바이오 사업 확장에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삼성은 이날 바이오를 반도체에 버금가는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또 바이오 시밀러(의약품 복제약)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 확대 등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날 준공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효과에 비춰 이 부회장의 목표가 구체화될 것으로 단언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4공장 건설과 함께 바이오 의약품 생산능력 총 42만 4000ℓ를 확보하며 단숨에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부문 세계 1위로 뛰어오른 까닭이다. 이는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허허벌판에서 직원 30명으로 첫 삽을 뜨고 이듬해 1공장을 완공한 지 고작 10년 만의 성과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아스트라제네카·로슈·일라이릴리·GSK 등 글로벌 상위권 제약사 20곳 중 12곳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2조 원을 투자해 지은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의 연면적은 축구장 29개 크기인 약 21만 ㎡(약 7만 2000평)에 이른다.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1.5배 크기다. 철근(1만 9,206톤)도 프랑스 파리 에펠탑의 2.6배나 되는 양을 사용했다. 공장 내 파이프 길이는 총 216㎞에 달한다. 이 공장의 생산능력(24만 ℓ, 완전 가동 기준)은 글로벌 바이오기업들의 단일 공장 평균(9만 ℓ)의 3배 수준이다.
삼성 측은 4공장의 생산 유발 효과를 5조 7000억 원, 고용 창출 효과를 2만 7000명으로 각각 추산했다. 이 가운데 직접 고용 수만 1850명이나 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직원 수는 2013년 이후 연평균 43%씩 증가해 현재는 4400명이 넘는다.
4공장에는 최첨단 설비와 자동화 기술을 적용했다. 공장 설계·조달·시공 등 주요 공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병렬 공법’을 사용해 일반적으로 4년 정도가 소요되는 공기를 23개월로 단축한 점도 특징이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유해 물질과 탄소 배출도 줄였다. 공장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전기차 충전용 전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 관계자는 “배양기·배관·필터 등 핵심 설비·부품을 국내 기업에서 공급받았다”며 “앞으로 국산 기자재 활용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이번 4공장 건설에서 멈추지 않고 더 공세적인 투자로 시장 지배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우선 11만 평 규모의 ‘제2 바이오 캠퍼스’를 조성해 제5 공장, 제6 공장을 잇따라 신설한다. 생산 기술과 역량을 고도화해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생산 허브’로 자리잡겠다는 구상이다. 직원도 4000명 이상 직접 고용한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6개 바이오 시밀러 제품을 시판 중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앞으로 항암·항염 치료제 위주로 구성된 제품 파이프라인을 안과, 희귀 질환, 골다공증 등 난치병 분야 등으로 확대해 사업 영역을 글로벌 수준으로 키울 계획이다.
무엇보다 바이오 사업을 향한 삼성의 이 같은 도전에는 최근 경영 일선으로 돌아온 이 부회장의 뜻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은 2015년 3월 중국 보아오포럼에서 “삼성은 정보기술(IT), 의학, 바이오를 융합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러한 혁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더 적은 비용으로 이용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20년에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동원해 코로나19 화이자 백신 조기 도입을 이끌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누바르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을 만나 코로나19 백신 공조와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바이오 네트워크’가 삼성에 대한 글로벌 업계의 신뢰와 평판을 높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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