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락장에서 기관투자가들의 매도가 쏟아지는 상황에 대해 금융 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섰다. 증시안정펀드나 공매도 금지와 같은 카드를 꺼내기 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부의 행동이 너무 늦고 소극적”이라며 비판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12일 금융감독원과 합동 시장 점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이후 영향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화두는 기관투자가의 ‘셀코리아’였다. 회의에서는 “기관투자가가 중장기 시계를 가지고 시장 불안이 확산되지 않도록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왔다. 사실상 기관투자가들의 단기 과매도 상황에 대해 지켜보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셈이다.
이날 오후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역시 공동으로 ‘증권시장 현안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손병두 거래소 이사장은 기관투자가들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최근 투자심리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만큼 기관투자가들이 과매도 추세 완화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협회에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나재철 금투협 회장 역시 “장기 투자 활성화 등 중장기 수급 안정 과제들이 조속히 실행될 수 있도록 건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금투협은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자문, 선물·신탁사 등 기관투자가 544개 회원사로 구성됐다.
정부와 유관기관들이 기관들에 대한 성토에 나선 것은 국내 기관들이 외국인보다 더 많은 매도 물량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기관은 최근 6개월간 총 5조 8112억 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5조 6572억 원) 보다 더 많은 금액을 팔아 치웠다. 반면 개인은 이 기간 12조 1299억 원을 순매수했다. 기관이 매도해 주가가 하락하고 다시 외국인이나 개인투자자가 연쇄 매도하는 것이 증시 급락의 원인이라는 인식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증안펀드 등 정책 카드가 통하지 않는다고 보고 사전 작업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기관과 달리 장기 투자를 원칙으로 하는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최근 약세장에서 ‘바이 코리아’에 나섰다. 금감원에 따르면 싱가포르와 노르웨이 자금이 지난달 각각 1조 8000억 원, 6000억 원을 순매수했다. 국부펀드 자금으로 추정된다. 싱가포르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의지에 속절없이 밀렸던 6월에도 4770억 원을 사들였다. 노르웨이도 올 들어 1조 5593억 원어치를 꾸준히 순매수하며 긴 호흡으로 투자하고 있다. 김후정 유안타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외국인의 순매도가 이어졌지만 장기 투자를 하는 외국인은 긴 호흡으로 우리나라 주식을 저가 매수하고 있다”며 “악재를 반영해온 국내 주식시장의 가격 매력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관의 매도는 개인들의 환매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 운용 업계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는 개인의 펀드나 변액보험 등을 위탁 운용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매도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증안펀드나 연기금 주식 매수, 일시적 공매도 중단 같은 조치 없는 구두 개입은 주가 하락 책임을 기관에 전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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