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충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증권투자(주식+채권) 자금이 석 달 만에 순유출 전환하고 외화 유동성 사정도 나빠지고 있다. 원화는 금융위기 우려가 나오는 영국 파운드화나 여전히 양적완화에 나서는 일본 엔화 등 다른 통화보다 더 떨어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두 번째 빅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을 결정한 주요 배경으로 원화의 급격한 절하를 꼽을 만큼 금융·외환시장 상황이 불안한 모습이다.
13일 한은이 발표한 ‘2022년 9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9월 외국인 증권 투자 자금은 22억 9000만 달러 순유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들어온 자금보다 나간 자금이 더 많은 순유출은 올 6월(-7억 8000만 달러) 이후 3개월 만이다. 특히 2020년 12월 이후 1년 9개월 만에 주식과 채권에서 자금이 모두 빠져나갔다.
외국인 주식 자금은 16억 5000만 달러가 빠져 3개월 만에 순유출로 전환됐다. 주요국이 긴축 강화에 나서면서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된 데다 경상수지 적자 등으로 한국 시장의 투자 매력이 줄고 있는 탓이다.
문제는 과거 한미 금리가 역전될 때마다 순유입됐던 채권 자금마저 두 달 연속 순유출됐다는 점이다. 외국인 채권 자금은 6억 40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한은 관계자는 “공공자금을 중심으로 유출이 지속되는 가운데 월말 차익 거래 유인이 확대되면서 민간 자금이 유입돼 순유출 폭이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외화 유동성 사정을 보여주는 스와프레이트는 8월 말 -0.66%에서 9월 말 -1.66%까지 떨어졌다. 한미 금리 역전 폭이 확대된 가운데 투자 심리 위축, 기관투자가의 해외 투자 목적 외화 자금 수요 등으로 크게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신용 시장이 위축되거나 외화 자금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을수록 스와프레이트가 떨어지는 만큼 최근 외화 유동성에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 은행의 차입 가산금리가 전월 대비 상승하고 외국환평형기금채 5년물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상승세로 전환하는 등 대외 외화 차입 여건도 좋지 않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원화 가치 하락 폭이 다른 어떤 통화보다 가파르다는 것이다. 9월부터 이달 11일까지 주요국 통화가치 변화율을 분석한 결과 원화 가치는 6.8% 떨어졌다. 대규모 감세안으로 변동성이 커진 영국 파운드화(-5.6%), 완화적 통화정책 중인 일본 엔화(-4.7%) 등 주요국 통화보다 하락 폭이 크다. 전쟁 중인 러시아 루블화(-5.7%), 전력 부족 문제로 2008년 최악의 정전 사태가 발생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란드화(-5.2%),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중국 위안화(-3.8%) 등 8개 신흥국 통화 가운데 절하 폭이 가장 크다.
정부는 미국 달러화 강세로 전 세계가 함께 영향을 받고 있어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유독 원화 가치 하락 폭이 커 불안하다. 올해 누적 무역수지 적자가 이미 300억 달러를 넘는 등 경제 펀더멘털이 취약한 상태에서 엔화·위안화 약세가 원화 가치에 더 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전일 대비 변동률도 9월 0.62%로 8월(0.47%) 대비 크게 확대됐다. 한은 관계자는 “9월 하순 이후 영국 경기부양책 관련 우려, 미 연준의 긴축 기조 완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 등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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