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의 대(對)중국 첨단 기술 규제에 맞서 ‘결연한 승리’를 다짐하고 있지만 정작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래 위기’를 우려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당국이 최근 미국의 반도체 규제 돌파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자국 반도체 기업들을 긴급 소집해 대책 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중국이 22일 폐막하는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이후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관련 분야에 대한 정책 지원 및 금융 지원을 크게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20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산업정보기술부(MIIT)는 지난주 자국의 주요 반도체 회사 관계자를 모아 연쇄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이달 7일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자국의 반도체 기술과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실시하자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회의는 중국 메모리반도체 선도 기업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와 슈퍼컴퓨터 전문 업체인 도닝인포메이션인더스트리 등 반도체 업체 경영진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고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당국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중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한 피해를 평가하고 핵심 부문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MIIT 관계자들은 중국의 정보기술(IT) 시장이 미국의 제재로 피해를 보는 기업들에 충분한 수요를 제공할 것이라며 업계의 불안 진화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국의 설득에도 기업 측 참석자들은 미국의 규제가 산업에 총체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핵심 반도체 업체인 YMTC는 자신들의 미래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MIIT 관계자들에게 경고했으며 AI 칩 제조사인 비런과기는 대만 TSMC와의 칩 생산 계약이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 여파로 철회될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비런과기는 올 8월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출시할 때만 해도 27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으나 미국의 규제로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놓였다. 블룸버그는 중국 내 어떤 회사도 TSMC를 대체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중국 반도체 업계의 위기감은 앞서 16일 시 주석이 당대회 업무 보고에서 ‘기술 자립’을 통해 미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다른 분위기로 해석된다. 당시 시 주석은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자강 실현을 가속화하고, 국가 전략상의 요구를 지향점 삼아 원천적·선도적 과학기술의 난관을 돌파하는 데 역량을 결집하며, 핵심 기술 공방전에서 결연히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같은 시 주석의 의중을 반영해 중국 지방정부들은 최근 앞다퉈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의 지방정부들이 자국의 반도체 기업에 대한 현금 인센티브와 정책 지원을 배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광둥성 선전시는 최근 관할 지역 내 반도체 설계 기업에 연간 1000만 위안(약 2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며 저장성 리수이시도 지역 내 반도체 설계 회사에 대해 연간 매출액에 따라 최대 500만 위안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방정부의 이 같은 지원책에 일부에서는 과잉 투자와 자원 낭비라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시 주석이 집권 3기의 청사진으로 기술 자립을 강조한 만큼 당국의 지원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기술 자립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던 슈나이더 애널리스트는 “바이든의 새로운 칩 수출 통제는 중국 공산당의 과학기술 야망에 큰 타격”이라고 트위터에 밝혔다. 번스타인의 마크 리 애널리스트도 “미국의 반도체 대중 수출 규제는 이전 규제가 다루지 못한 많은 허점을 막은 것”이라며 “중국이 반도체 기술을 예전처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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