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대내외 경기상황으로 신용위험이 커지자 국내 은행들이 기업에 대한 대출 문턱을 한층 더 높일 것으로 조사됐다. ‘레고랜드 사태’로 불거진 채권시장의 자금경색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시중 은행마저 기업 대출을 바짝 조이면서 기업의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한국은행이 총 204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설문에 따르면 4분기 국내 은행의 기업에 대한 대출태도 지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3으로 조사됐다. 이 지수가 마이너스(-)이면 대출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응답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3분기에 이어 2개 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는 시중 은행들이 4분기에도 기업에 대한 대출심사를 강화하겠다는 뜻한다.
은행들이 기업 대출의 고삐를 죄는 것은 불확실한 대내외 경기상황으로 기업의 신용위험이 커지면서 대출 건전성 관리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실적 부진과 취약기업의 재무건전성 악화 등으로 신용위험에 대한 경계감이 커질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은행들이 예상한 4분기 신용위험지수는 39로, 3분기(31)보다 8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2분기(42)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신용위험 지수는 17과 31로 3분기보다 각각 6포인트씩 상승했다.
은행이 기업 대출을 조이고 있지만 기업들의 대출 수요는 4분기에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불확실한 경제여건 탓에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기업 수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최근 회사채 발행시장마저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의 대출수요지수가 5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은행은 기업과 달리 가계에 대한 대출 문턱은 낮출 것으로 조사됐다. 가계주택에 대한 대출태도 지수는 3분기 8에서 4분기 17로, 가계일반은 6에서 19로 각각 높아졌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세 둔화로 금융기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반자금 대출을 중심으로 완화적 태도가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계 신용위험은 3분기 33에서 4분기 42로 상승했다. 이는 2003년 3분기(44) 이후 약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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