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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흰둥이 야만인'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나

■위어드

조지프 헨릭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위어드 통해 인류기원·진화 분석

카톨릭 '집약적 친족관계' 해체

도시화 맞물려 집단 지능도 창출

르네상스-산업혁명-정복전쟁 펼쳐

"수천년 걸리는 유전자 변화보다

문화는 사회·뇌 구조까지 영향력"





1068년 스페인 톨레도의 이슬람 학자 사이드 이븐 아흐마드는 세계를 과학과 학문에 기여한 집단인 ‘문명인’과 기여하지 못한 ‘야만인’으로 나눴다. 인도인·유대인·이집트인·페르시아인·그리스인·로마인은 문명인에 포함했다.

반면 중국인과 투르크인은 야만인 상류층으로 구분했고 나머지는 남쪽의 ‘검둥이 야만인’(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과 북쪽의 ‘흰둥이 야만인(유럽인)’으로 다시 나누었다. 1000년 전만 해도 세계의 중심은 이슬람과 중국이었다. 하지만 지금 ‘북쪽 야만인’의 후손들은 르네상스, 산업혁명, 식민지 정복 전쟁 등을 거쳐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위어드’는 서구 사회의 독특한 심리·문화·제도가 어떻게 세상의 주류가 됐는지 파고든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농경 사회가 시작된 1만2000년 전부터의 인간 사회 변화상을 생물지리적으로 추적한다면 이 책은 서기 1000년 무렵 이후의 현대 인류 사회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분석한다.

저자는 조지프 헨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심리학과 및 경제학과 교수도 역임했다. 그는 인류학·역사학·심리학·경제학을 넘나들면서 서양문명 번영의 토대가 된 서양인의 심리가 다른 문화권과 어떻게 다른 지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헨릭에 따르면 ‘위어드(WEIRD)’는 서구의(Western), 교육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람들이다. 오늘날 국제 사회의 주류인 이들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나 1000년전 자신들의 조상과 달리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고 통제 지향적이며 인내심이 강하다.



또 분석적이며 낯선 사람도 신뢰한다. 특히 집단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신의 특성과 성취, 열망 등에 초점을 맞춘다. 이처럼 독특한 심리를 가진 집단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우선 조로아스터교 등 다른 종교와 달리 카톨릭은 결혼과 가족, 유산과 소유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근친혼 금지, 일부일처제 정착 등으로 기존의 집약적인 친족 관계가 해체되고 핵가족화가 가속화한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비개인적 상업이 활성화되는 한편 상인 길드와 자치도시에서부터 대학과 초지역 수도회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인 조직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 조직들은 점차 개인주의적인 새로운 규범과 법률에 따라 운영되었다.” 또 도시에서 상업에 종사하다 보니 인내심, 긍정적인 사고, 자기 규제와 근면성, 시간 절약 등과 같은 위어드의 특성이 자리잡았다. 이 같은 심리적 변화는 입헌정부, 민주정치, 개인주의적 종교, 과학학회, 혁신 등이 부상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16세기 프로테스탄티즘 종교 개혁은 인류의 문해율 향상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개신교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면 스스로 성경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글을 읽을 줄 아는 농민들은 준비된 노동력이었고 급속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특히 비개인적 신뢰 증대, 문해력 확대, 독립성 증대 등과 같은 심리적 발전이 도시화와 맞물리면서 집단지능이 창출됐다. 헨릭은 개인을 상호연결한 집단지능 덕분에 계몽주의에 이어 민주주의,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본다.

나아가 저자는 인류의 진화에서 문화가 유전자보다 더 강력한 힘이라고 말한다. 유전자 진화는 수천년에 걸쳐 느리게 되는 만큼 실제로는 문화가 인류의 발전, 사고와 심리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문화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도 이끌기도 한다. 가령 성인의 95%퍼센트가 읽고 쓸 줄 아는 사회는 5%만이 읽고 쓸 줄 아는 사회보다 평균적으로 뇌들보(좌우 대뇌반구가 만나는 부분)가 더 굵은 반면 얼굴 인식 능력은 떨어진다. 저자는 “믿음, 관행, 기술, 사회 규범 등의 문화는 우리의 동기와 지적 능력, 의사결정의 편향을 비롯해서 우리의 뇌와 생물학, 심리학의 행태를 바꿔놓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헨릭의 분석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바로 공진화(밀접한 관계를 갖는 둘 이상의 종이 상대 종의 진화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하는 것)”이라며 “유전자, 생태환경, 심리, 문화 등이 서로 꼬리를 물고 함께 진화하며 오늘날의 인간 사회를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4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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