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세계제약산업전시회(CPHI)’가 1일(현지 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막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여파로 중국 기업 참여가 대폭 줄어든 가운데 한국과 인도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대거 참가해 빈자리를 노리는 모습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K바이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상담 부스는 밀려드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미팅 요청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붐볐다.
주최측에 따르면 올해 국적별 CPHI 참가 기업들은 인도가 378개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중국(143개), 미국(111개), 한국(62개)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코로나19 봉쇄 정책 등을 이유로 대거 불참해 상대적으로 인도 기업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한국은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 CPHI에 20여 곳이 참가했던 것에 비해 3배나 많은 기업들이 단독 부스를 마련하고 활발한 현지 미팅을 이어갔다. 전시회에서 만난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들은 “미중 갈등으로 중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이 크게 위축되고 있으며, 글로벌 빅파마들은 불확실성을 피해 탈중국을 가속화하는 추세”라며 “올해 CPHI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틈새를 공략하려는 인도와 한국 기업들의 전략이 두드러진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중국은 당초 이번 전시회에 인도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143개 기업이 부스를 설치할 예정이었지만, 박람회 현장에서는 중국 기업의 부스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중국 제약사 칭다오 지우롱 관계자는 “정부의 코로나19 봉쇄 정책 때문에 현지 행사 참여가 불가능해졌다”며 “대부분의 기업이 부스를 신청하고 현장에 오지 못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제정에 더해 코로나19 봉쇄 정책까지 시행되며 중국의 바이오 산업 성장에 급제동이 걸리는 양상이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셀트리온(068270)·롯데바이오로직스·유한양행(000100)·보령(003850) 등 국내 기업들의 부스는 활기를 띄었다. 국내 기업들은 경영진, 실무진으로 나뉘어 하루 종일 현지 미팅을 이어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스를 찾은 바차르 카다이데 엔바이로테이너 글로벌 생산 매니저는 “우리는 온도 조절 기기를 공급하는 스웨덴 회사”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흥미가 있어 부스를 찾았다”고 말했다. 제임스 최 삼성바이오로직스 글로벌 정보마케팅센터장(부사장)은 “이번 행사는 첫째 날부터 반응이 아주 좋다”며 “이미 행사 기간 주요 바이어들과의 미팅 일정도 모두 찼다”고 전했다. 셀트리온·롯데바이오로직스의 부스를 찾는 발길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셀트리온은 규제 당국 관계자들을 비롯 여러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논의했고,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시라큐스 공장의 수주 계약을 위해 쉼 없이 미팅을 진행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롯데제과가 최근 출시한 ‘방탄소년단(BTS) 껌’을 제공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글로벌 빅파마들은 이같은 한국 기업들에 경계심을 높이는 모습이었다. 안드레 언그럴트 론자 매니저는 “우리는 삼성바이로직스를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의 경쟁사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 제약사들은 현장에 총 378개의 부스를 꾸려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다.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 제조사가 각각 194곳, 103곳이다. 참가 인원이 많다 보니 전시장 인근 호텔에서 인도 투숙객이 여럿 보였고, 전시회장의 여러 점포에선 인도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한 인도 제약사 관계자는 “인도의 제약 산업은 전통적으로 제조에 강점이 있다”며 “국제 무대에서 파트너십을 맺기 위해 참가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K바이오와의 경쟁을 의식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인도 제약사인 라보레이트의 파락 바띠아 대표는 “한국 바이오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인도 기업들과 글로벌 시장에서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벌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의 또 다른 특징은 전시회의 무게 중심이 전통 의약품에서 바이오 의약품으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론자, 캐털란트 등 글로벌 CDMO기업들이 행사장의 가장 중심으로 통하는 H홀에 대형 부스를 대거 열었다. H홀에는 CDMO 기업들의 주요 고객사인 화이자, 애브비 등 글로벌 빅파마 부스도 차려져있다. CPHI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정밀 의학이 보편화하면서 CDMO의 장점이 소형 바이오벤처를 넘어 글로벌 대형 제약사에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정밀 의약품 생산 공정은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이지만 소모적이라서 대형 제약사들이 자체 수행하기에는 실용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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