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암호화폐와 대체불가토큰(NFT) 등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방안과 시장 안정화를 위한 법안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간 공백 상태였던 가상자산의 법적 정의가 보다 명확해지면 ‘루나·테라 사태’ 등 대규모 코인 관련 사건들에 대한 구제 방안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
8일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법무부는 올해 9월 ‘민사법상 가상자산 관련 입법 개선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정부는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 입장과 국내 입법 방향을 정할 방침이다. 법무부는 연구 용역에서 민사법적 관점에서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과 권리관계, 규율 필요성과 해외 사례 수집을 주문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스위스, 사법통일국제연구소(UNIDROIT) 등 가상자산 관련 법제와 원칙을 발 빠르게 마련한 국가 및 국제기구의 논의를 비교법적으로 검토한다는 원칙이다.
연구 기간은 지난달 20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약 두 달간이며 한국외대 연구산학협력단이 용역을 맡는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용자 보호와 가상자산 시장의 안전을 위한 국내적 입법 방향을 모색하고 법무부 측 입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특정 금융 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국내 최초로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등장했지만 현장에 적용하기는 아직 미흡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 위주로 규제를 정의한 데다가 규율 범위가 좁아 민사 등 재판에 근거 법령으로 참고하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현행법하에서는 해당 사건뿐 아니라 제2의 루나 사태가 터져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루나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단(단장 단성한 부장검사)은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현행법상 처벌하기 위해 일단 가상화폐를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투자계약증권’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를 개발하는 등 보강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무부의 연구 용역으로 그간 공백 상태로 남아 있던 가상자산의 개념과 법적 성질 등이 보다 명확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투자자 보호 등에 관한 내용과 루나·테라 폭락 사태과 같은 대규모 투자 손실 발생 시 구제 방안에 대한 내용도 윤곽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일례로 가상자산에 대한 공매 절차나 가압류, 강제집행 등은 따로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채무자 동의 없이는 강제집행이 어려운 상황인데 법무부가 입법에 나선다면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지난해 하반기 기준 55조 2000억 원, 일평균 거래 규모는 11조 3000억 원이다. 가상자산 범죄 피해액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평균 4035억 원이며 총 피해 규모는 4조 1615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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