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인가, 운용 역량의 차이인가.’
총 130조 원에 달하는 국내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시장을 두고 과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입찰 과정에서의 높은 진입 장벽 때문에 운용 업계 상위 4개 회사가 시장 95%를 차지하고 후발 주자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퇴직연금 제도 개편으로 OCIO 시장 규모는 1000조 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신규 사업자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도록 평가 제도를 정비해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10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OCIO 시장 규모는 8월 말 기준 132조 원에 달한다. 공적기금이 85%(112조 원)로 비중이 가장 컸다. 민간기업과 공공기업의 비중은 각각 6%, 5%로 집계됐다. 2019년 공적기금 규모가 85조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3년 만에 32%나 급증한 것이다.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것과 달리 제한된 운용사만 참여하는 과점 형태는 고착화하고 있다. 자산운용업만 보면 전체 시장에서 상위 4곳인 삼성자산운용·미래에셋자산운용·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의 점유율이 95%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초기 시장에 진입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었던 ‘공적기금 부문’에서의 점유율은 98%에 달한다. 국내 상위 4개 사는 연기금 OCIO 지위를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려왔다. 실적(트랙레코드) 축적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연기금과 유사한 공공기관 자금 운용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또 법인 위탁 부문에서도 기존 운용 실적을 바탕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국내 OCIO 시장이 이처럼 편중된 방향으로 성장한 것은 ‘경쟁입찰 제도’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기금 투자 풀부터 시작된 OCIO 시장은 정량 평가, 정성 평가, 가격 평가를 거치는 경쟁입찰 방식 선정 과정으로 획일화돼 있다. 대부분 기관투자가는 이 사례를 준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이 후발 주자에 대한 지나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정량 평가에서 점수를 부여하는 표준화 점수법은 특정 평가 항목(일임 운용 자산 규모)에서 지나치게 점수 간격을 벌려 후발 사업자가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게 한다. 자산운용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업자의 OCIO 역량을 평가하기에 큰 관련성이 없는 평가 항목을 사용하거나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인력에 대해 평가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정성 평가에서도 기존 사업자와 후발 사업자 간의 정보 비대칭이 장벽으로 존재한다. 중소형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기존 사업자는 기금 운용의 현황과 개선 과제에 대한 비공개 정보를 갖고 있으나 후발 사업자는 기금 운용 관련 정보에 접근이 제한돼 제안서 작성 시 기금에 적합한 맞춤형 솔루션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안하기 어렵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일부 사업자의 과점 구조가 경쟁적 시장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과점 구조로는 위탁자의 서비스 수요를 충당할 수 없어 결국 위탁자들의 효용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운용 업계의 한 관계자는 “후발 사업자의 시장 참여 통로 확대를 통한 운용 경력과 경험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자가 OCIO 시장을 개척할 동력을 얻는 게 바람직하다”며 “후발 사업자의 제안에 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량 평가 제도와 기금 운용에 대한 정보 공개 등 관련 법령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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