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한국과 천문학적 규모의 사업 계약을 맺은 후에도 주요 대기업 총수들을 한 번 더 불러 모았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인공지능(AI)과 5세대(5G) 무선통신 기술 부문에서, SK(034730)그룹은 친환경에너지 부문에서, 현대차(005380)그룹은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부문 등에서 추가 수주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009830) 부회장, 정기선 HD현대(267250) 사장, 이재현 CJ(001040)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000150)그룹 회장, 이해욱 DL(000210)그룹 회장 등 8명과 저녁 회동을 가졌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친 뒤 오후 3시 5분께 호텔로 복귀했다. 방탄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소총으로 무장한 채 왕세자 일행을 앞뒤로 경호했다.
이날 가장 먼저 김 부회장이 오후 4시 22분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도착한 박 회장은 A4 용지에 인쇄된 서류를 직접 들고 차량에서 내렸다.
이재용 회장과 최 회장은 각자의 차량을 타고 오후 4시 30분 나란히 현장에 도착했다. 두 총수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예정인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 없이 호텔로 들어갔다. 이후 이재현 회장, 정 사장, 정 회장 순서로 모든 총수가 회담 장소에 도착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첨단 기술, 건설, 에너지, 교통수단, 콘텐츠, 원자력발전 등과 관련한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만남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5시부터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저녁 회동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정 사장은 이날 저녁 회동을 마치고 나온 뒤 취재진과 만나 “오랫동안 여러 사업을 같이해왔던 거라서 앞으로도 여러 가지 미래를 같이 한 번 보도록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들 총수가 빈 살만 왕세자와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네옴시티’와 관련한 추가 수주 여부를 주로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재계 서열 1위이자 빈 살만 왕세자와 개인적 친분이 깊은 이재용 회장이 가장 폭넓게 협력 방안을 모색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삼성은 삼성물산·현대건설 컨소시엄을 구성해 네옴시티 지하에 고속철도 터널을 뚫는 ‘더 라인’ 공사를 이미 수주한 상태다. 여기에 삼성물산은 이날 사우디와 그린수소 개발, 모듈러 기술 사업 양해각서(MOU)를 추가로 체결했다. 삼성은 나아가 현지 스마트시티에 AI, 5G 무선통신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제공할 역량도 갖췄다.
최 회장은 빈 살만 왕세자와 친환경에너지 부문에 대한 투자를 논의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최근 에너지 투자를 각각 확대하는 SK그룹과 사우디 국영기업 아람코 간 접점을 공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현대차그룹의 정 회장은 네옴시티에 AAM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완성차 업체에서 자율주행·AAM·로보틱스를 아우르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최근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인프라 시설인 ‘UAM 버티포트’ 콘셉트 디자인을 공개한 것도 네옴시티 수주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율주행차·수소차·수소트램 등도 추가 수주가 기대되는 분야다. 현대로템은 이날 사우디 투자부와 네옴시티 철도 협력과 관련한 MOU를 맺었다.
김 부회장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대 방안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네옴시티에서 사용될 UAM 분야도 한화그룹의 핵심 신사업이다. 이 밖에 HD현대의 정 사장은 조선·플랜트 관련 사업에 주목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CJ그룹의 이 회장은 문화·콘텐츠 교류를, 두산그룹의 박 회장은 원전 건설 참여를 각각 검토했을 공산이 크다. DL그룹의 DL케미칼은 이날 사우디 투자부와 합성유 공장 설립과 관련한 MOU를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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