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로 갈수록 내년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암울해지고 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1%(7월 전망)에서 2.0%로 내렸는데 2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그보다 낮은 1.8%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내년 한국 경제가 1.8%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고 한국은행 또한 24일 전망치를 2.1%(8월 전망)에서 1%대 후반으로 내려 잡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OECD는 한국의 전망치를 다른 국가보다 더 큰 폭으로 내려 잡았다. 내년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9월과 같은 2.2%로 유지했는데, 한국의 전망치는 2.2%에서 1.8%로 0.4%포인트 낮췄다. 주요 20개국(G20) 중 러시아(-4.5%→-5.6%)와 캐나다(1.5%→1.0%)를 제외하고 가장 큰 하향 조정 폭이다.
주목할 점은 OECD가 최근 한국 경제성장을 견인한 소비 상황마저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대목이다. 9월 한국 경제 보고서에 담긴 “방역 조치 완화에 따른 소비 회복 등에 힘입어 내년 한국 경제가 2.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평가가 180도 바뀐 것이다. 이날 OECD는 “서비스·공공요금을 중심으로 물가는 당분간 높은 수준을 보일 것”이라며 “고물가에 따른 가처분소득 증가세 둔화 등이 향후 민간 소비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올 3분기 가구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전년 대비 2.8% 감소해 지난해 2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소득보다 물가가 더 가파르게 올라 가계 지갑이 얇아졌다는 뜻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질소득이 줄면 경제를 견인한 소비도 위축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출에 대한 경고음도 높였다. OECD는 “반도체 경기 하강과 글로벌 수요 위축에 수출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수출 비중이 20%나 되는 반도체 경기의 둔화는 우리 경제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대 교역국인 중국도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이달 무역수지를 보면 대중 수출과 반도체 수출이 공히 전년 대비 30% 가까이 빠졌다. 이미 10월에 2년 만에 감소세로 접어든 수출이 당분간 돌파구를 찾기 어려움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투자도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기준 GDP의 15%를 차지하는 건설 투자에 대한 전망이 어둡다. OECD는 “주택 시장 부진이 투자를 둔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고 평가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역시 “급등한 금리에 건설 투자심리도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며 “내년 주택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커 투자심리를 북돋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도 심상찮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1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기준점인 100을 훨씬 밑도는 85.4를 기록했다. 26개월 만의 최저치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가 전월보다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뜻인데 올 4분기 BSI 전망은 87.2로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67.9) 이후 최악일 만큼 좋지 않다.
OECD는 2024년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9%로 제시하며 1%대 저성장이 내후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다만 OECD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당분간 긴축 통화정책을 지속해야 한다”며 물가 관리를 정책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어 “재정준칙 채택 등 재정 건전화 노력이 필요하며 재정정책은 취약 가계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선별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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