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득점만큼 가치 있는 것은 실점을 막아내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 상대에 한숨을 안기는 선방의 값어치가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초반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거미손 월드컵’이다.
23일(이하 한국 시간) 카타르 알라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 독일의 대회 조별리그 E조 1차전. 후반 30분 터진 일본 도안 리쓰(프라이부르크)의 극적인 동점골은 5분 전 골키퍼 곤다 슈이치(시미즈 에스펄스)의 연속 ‘선방쇼’가 있었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곤다는 후반 25분부터 약 20초간 쏟아진 독일의 소나기 슈팅을 모두 막아내 결과적으로 2 대 1 역전승에 디딤돌을 놓았다. 문전 오른쪽에 있던 요나스 호프만(묀헨글라트바흐)의 슈팅을 각도를 좁히고 나와 쳐낸 곤다는 이어진 세르주 그나브리(바이에른 뮌헨)의 중거리 슈팅을 펀칭했다. 그리고는 왼쪽 크로스를 받은 그나브리의 거의 완벽한 헤딩슛을 몸을 날려 막아냈다. 리바운드된 공에 그나브리가 재빨리 반응해 찼지만 이번에는 다리로 골문을 사수했다. 20초간 네 번이나 선방한 것이다. 곤다는 득점한 동료들을 제치고 맨 오브 더 매치(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4년 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한국 2 대 0 승) 맨 오브 더 매치도 한국의 골키퍼 조현우(울산)였다.
24일 F조 1차전 벨기에와 캐나다의 경기(1 대 0 벨기에 승)에서 캐나다 선수들은 견고한 벽 앞에 무력감을 느꼈다. 유효 슈팅 4개를 포함해 총 21개의 슈팅으로도 골문을 열지 못했기 때문이다. 2m 장신인 벨기에 수문장 티보 쿠르투아(레알 마드리드)는 전반 10분 페널티킥을 막아낸 뒤 전반 막판 동료들이 만든 소중한 한 골을 끝까지 지켜냈다. 전날 폴란드전에서 기예르모 오초아(아메리카)는 멕시코를 살렸다. 유럽 빅 리그에서 ‘득점 기계’로 통하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바르셀로나)의 페널티킥을 막아 팀에 귀중한 승점 1(0 대 0 무)을 안겼다. 골키퍼로는 작은 183㎝ 키에도 기적 같은 선방과 정밀한 킥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오초아는 이번이 벌써 자신의 다섯 번째 월드컵이다. 쿠르투아와 오초아는 2018 러시아 대회 때 각각 27개와 25개의 세이브로 이 부문 전체 1·2위를 차지했던 선수들이다.
월드컵에는 최고 골키퍼에게 주는 골든 글러브상이 있다. 구소련의 ‘흑거미’ 레프 야신의 이름을 따 야신상을 주다가 2010 남아공 대회부터 상 이름을 바꿨다. 4년 전 최고 수문장으로 공인 받은 쿠르투아는 사상 첫 2회 연속 골든 글러브를 노린다. 포지션 구분 없이 대회 최고 선수에게 주는 상은 골든볼인데 드물지만 골키퍼가 골든볼을 수상한 적도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의 올리버 칸이다. ‘타이탄’으로 불린 그는 브라질 골잡이 호나우두, 한국의 수비 핵 홍명보를 제치고 골키퍼로는 처음으로 골든볼에 올랐다. 골키퍼 골든볼은 칸이 지금까지도 유일한 기록을 세웠다.
20년 만의 골키퍼 골든볼 진기록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알오와이스(알힐랄)도 도전한다. 아르헨티나를 2 대 1로 무너뜨릴 때 몸을 사리지 않는 방어로 유효 슈팅 6개 가운데 5개를 막았다. 1차전에서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를 상대했던 알오와이스는 26일 오후 10시 C조 2차전에서 폴란드와 맞닥뜨린다. 월드컵 첫 골을 잔뜩 벼르는 레반도프스키와 대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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