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이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 유행하는 ‘트윈데믹’ 시기에 ‘감기약 품귀대란’을 우려해 사상 처음으로 조제용 감기약가를 한시 인상했지만 충분한 증산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이미 감기약 생산 라인을 최대로 가동 중인 곳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증산 여력이 있는 제약사들은 이번 약가인상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다. 증산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일부 제약사들 역시 비용 투자가 필수적인 만큼 실제 증산 규모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아세트아미노펜 650㎎’이 함유된 ‘세타펜8시간이알서방정’ 등 18개 품목에 대해 인상된 건강보험 상한 금액이 적용된다. 현행 1정 당 50~51원인 건강보험 상한 금액은 내년 12월 1일까지 최대 90원으로 인상되고 그 이후부터 약가는 70원으로 유지된다.
정부가 약가를 올린 것은 올 겨울 트윈데믹에 대비해 제약사들이 감기약 생산을 늘리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감기약들이 감기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증상 완화에도 쓰여 신규 확진자가 급증할 때마다 공급 대란이 발생했었다.
제약업계는 약가 인상을 조건으로 감기약 증산을 확약했다. 이달부터 내년 11월 말까지 월평균 생산량을 현재 4500만 정에서 6760만 정으로 50% 가량 늘리기로 했다. 특히 약가 인상을 받은 제약사들은 이달부터 내년 4월까지 겨울철과 환절기를 감안해 기존 생산량 대비 60% 이상 생산해야 한다.
제약업계는 이번 약가 인상과 증산에 대해 대체적으로 환영하고 있지만 실제 증산에 나설 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이다. 이미 감기약 생산을 최대로 끌어올린 곳들이 많은데다, 정부가 요구한 증산 규모가 상당해 추가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감기약 품목은 대표적인 적자품목이었는데 이번에 약가가 인상돼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면서도 “증산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규모를 어느 정도로 할 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아세트아미노펜 함유 감기약을 증산하면 수익성이 좋은 감기약(일반의약품) 생산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며 “이번 약가 인상을 반길 수 없는 이유”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C사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감기약 생산을 늘릴 계획이 없다”며 “최대 규모로 생산능력을 늘려 놓은 만큼 더 이상은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다른 의약품 생산 차질을 우려하기도 한다. D사 관계자는 “보건 당국 차원에서 실질적인 감기약 수요 조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증산폭이 굉장히 큰 편”이라며 “감기약 생산을 이 정도로 크게 늘리면 되레 다른 의약품들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올 3월 일부 약국에서는 설사약이 품절됐다. 오미크론 확진자가 60만 명 가량 발생하며 감기약 생산에 매진하던 대원제약(003220)이 설사약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물론 시장전문가들도 이번 약가 인상이 고스란히 감기약 생산 기업들의 실적 상승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정부가 사상 최초로 약가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종근당(185750)의 주가는 전날 종가 대비 0.92% 상승한 8만 7600원, 하나제약(293480)은 1.3% 오른 1만 5550원, 삼아제약(009300)은 0.94% 오른 1만 6050원에 장을 마감했다. 모두 코스피·코스닥 상승 폭을 밑돌았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제약사들의 조제용 감기약 매출 규모가 워낙 적어 증산을 한다고 해도 매출 증대는 미미하기 떄문에 주가가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제약업계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감기약을 충분히 증산할 수 있게끔 공장 확대 등 지원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팬데믹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이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공장 확장에 나서기는 어렵다”며 “정부가 생산 설비 증설 등을 지원한다면 감기약 수급 우려를 해소하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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