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늙은 호박과 고축가루 등 식자재를 훔친 60대 여성이 재판에서 선처받았다. 재판부는 절도 금액이 소액이고 경제적 환경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6단독 강영재 판사는 절도 혐의로 기소된 황모(62) 씨에게 이달 21일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다만 벌금형의 집행은 1년간 유예했다.
황씨는 2020년 12월 서울 종로구의 한 마트에서 늙은 호박 1개와 고춧가루 1봉지, 보이차 2통을 훔쳤다. 이 범행 한 달 전에도 같은 마트에서 해바라기씨 1통과 잣 1봉지를 훔쳤다. 황씨가 훔친 식자재는 총 4만6500원어치였다.
그는 같은 마트에서 2021년 1월에도 1만2000원 어치 물품을 훔쳤다가 벌금 5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황씨는 고시원에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트 측의 고소로 수사를 받은 그는 벌금형의 약식 명령이 나오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황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소액의 벌금형을 선고했고 또한 그 집행을 유예하며 이유를 상세하게 밝혔다. 재판부는 앞서 확정된 사건과 이번 범행의 시기가 가깝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여러 사정만 잘 맞았더라면 하나의 사건으로 함께 처리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앞서 확정된 사건은) 피해액이 소액이라는 점, 피고인의 나이와 경제적 상황 등이 주요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두 사건이) 함께 처리됐더라도 벌금형에 집행유예라는 판단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함께 재판 받을 수 있었던 각 범행이 여러 사정으로 별도로 재판받게 된 것이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게 형법 제39조의 취지”라며 “그 취지가 이 사건에서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형법 39조는 ‘경합범’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한 사람이 여러 범죄를 저지르고 일부는 판결이 확정되었을 경우, 나머지 죄에 대한 판결을 선고할 때 형을 감경할 수 있는 조항이다. 현행법은 판사가 형을 선고할 때 처벌 조항마다 ‘하한형’을 정해둔다. 이 때문에 죄를 여럿 지은 피고인이 각기 다른 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면, 하나의 사건으로 합쳐 재판받는 경우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받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게 형법 39조다.
경합범에 관한 법리는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된 때 적용하는데, 재판부는 벌금형이 확정된 경우인 이번 사건에서 그 법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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