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자본시장은 그야말로 복합·다중 위기의 시간이었다. 2월 촉발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전 세계 인플레이션을 가속화 했다. 물가 잡기에 나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의 자이언트스텝 여파로 한국도 기준금리가 급등하면서 외국인 투자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했다. 예상보다 더 가파른 금리 상승에 고전하던 채권 시장은 레고랜드 사태로 얼어붙었고 주요 먹거리였던 IPO(기업공개)는 철회가 이어졌다. 최근 몇년 효자 역할을 했던 부동산금융은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어려운 상황은 국내 증권사들의 실적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52개 증권사의 올해 반기 순이익은 3조1412억 원으로 지난해 반기(5조2720억 원) 대비 40% 가까이 급감했다. 코스피 상장 증권사(16곳)의 3분기 누적 연결 순이익은 3조8311억 원으로 전년 동기(7조1669억 원) 보다 46.5% 줄었다.
강력한 한파가 몰아치고 있지만 증권사와 운용사들은 리스크 관리와 사업 고도화를 통해 위기 돌파에 나섰다. 초대형IB를 지향했던 대형 증권사들은 단순 중개 수수료 수익에서 벗어나 그동안 가꿔온 IB 역량과 자산관리(WM) 분야의 실력을 보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자체 네트워크를 한층 다지고 디지털 혁신을 진행하는 한편 해외주식거래 서비스 같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다.
운용업계는 상대적으로 무난한 한해를 보냈다는 평가다. 자금경색과 유동성 위기 국면에 영향을 받았다지만 운용자산규모(AUM)에 연동된 운용보수가 매출의 적잖은 비중을 차지해 이익 변동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로 돈이 몰리면서 운용사들의 새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이달 28일 기준 국내 ETF 순자산 규모는 80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73조9000억 원) 대비 7조 원 가량 증가했다. ETF 종목은 지난해 말 533개에서 647개로 21.3% 늘었다. 일 평균 ETF 거래 대금 역시 2조8589억 원으로 증시 급락에도 지난해(2조9389억 원)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다만 직접 투자가 줄면서 코스피 거래대금 대비 ETF 비중은 19%에서 30.9%로 급등했다.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각축전도 치열하다. 운용사들은 퇴직연금사업자에 대표 타겟데이트펀드(TDF)를 넣기 위해 경쟁 중이다. TDF는 은퇴시점에 따라 자산 비중을 알아서 조절해주는 펀드다. 현재 퇴직연금 시장의 규모는 300조원에 달하고 있다. 그 중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이 40%를 차지한다. 100조 원이 넘는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다만 운용업계 전통 먹거리인 공모펀드 수탁액은 10년래 처음으로 101조 원 선까지 떨어졌다. 연초 대비 자금 유출 규모는 7조 원에 육박한다. 8월 금융 당국이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증시 침체와 채권 불안에 자금 유출세는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본격적인 승부는 내년이다.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하락해 1%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본격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실물 경기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의 여건은 올해와 마찬가지이거나 혹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리스크 관리와 고도화된 서비스를 갖춘 금융투자사들의 경우 차별화된 경영 성과를 통해 오히려 내년을 도약의 한 해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내년 상반기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진입할 수 있어 주요 금융투자사들의 차별화 된 실력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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