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한 국내 대형 은행들이 현지 부동산 시장 경착륙과 금융감독 당국의 서슬 퍼런 칼날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대출 자산의 담보 가치가 떨어지며 연체율이 급등하는 데다 중국 금융 당국의 먼지털이식 감사로 대규모 과태료 처분까지 맞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중국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의 금융감독 기관들이 은행은 물론 고객에게도 과태료를 매겨 중국 내 우리 은행들의 영업 입지를 더욱 좁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금융감독원과 중국 현지 은행 등에 따르면 중국 내 우리 은행들의 연체율이 급등하는 가운데 중국 금융 당국으로부터 수십억 원대의 과태료까지 부과돼 리스크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금감원은 국경을 넘어 리스크가 전이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내 은행권에 중국 리스크 자체 점검을 주문했다. 중국의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되는 즉시 금감원이 국내 은행 중국법인에 검사반을 보내 해외 현장 검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중국 금융 당국의 검사는 시스템 전반을 들여다보며 중국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을 압박하고 있다. 올해 9월 하나은행은 중국 국가외환관리국 광둥성분국으로부터 1576만 5423위안(약 29억 1077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외환은행과 통합 하나은행이 출범한 뒤 해외 금융감독 당국이 매긴 과태료 중 단일건 기준 최대 규모로 전해졌다. 광저우분행이 ‘내보외대(외화 지급보증)’ 업무 취급 시 조사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자금 출처, 연체 가능성에 대한 감사를 소홀히했다는 이유였다. 중국은 외화 반출에 극도로 민감한 만큼 국가외환관리국이 직접 나선 것이라고 현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앞서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가 지난해 12월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베이징은보감국으로부터 경영성물업대출(임대사업자 대출) 관련 내부 통제의 취약점이 적발돼 부과받은 350만 위안(약 6억 4613만 원)과 합치면 총 2000만 위안에 육박한다.
중국 금융감독 당국이 칼을 겨눈 국내 은행은 하나은행뿐이 아니다. 우리은행은 기업결산계좌 개설자료 신고를 미루다가 지난해 7월 중국 인민은행에 198만 5000위안(약 3억 6593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했다. 올 들어서도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도합 110만 위안(약 2억 276만 원)의 과태료를 물었다. 신한은행 역시 지난해 12월 부적절한 예금영업 행위 등이 문제가 돼 베이징은보감국으로부터 270만 위안(약 4억 9655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국내 은행들은 제재 이후 미비점을 보완했다고 밝혔지만 중국 내 금융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 금융감독 당국의 무차별적 감사를 우려하고 있다. 중국 현지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영업하려면 중국 규제에 잘 따르라는 시그널을 계속 보내는 것”이라며 “당분간 중국 금융감독 당국의 저인망식 검사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확대되며 우리 은행들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도 확대되고 있다. 금감원 등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중국 익스포저는 총 21조 3501억 원, 대출 자산은 총 155억 4200만 달러(약 20조 2046억 원)를 기록했다. 은행별로 보면 한중 수교 원년인 1992년 중국에 처음 진출한 하나은행(옛 외환은행)의 익스포저와 대출 자산이 단연 1위다. 하지만 한때 현지 로컬 은행과 자웅을 겨루고 지린은행 등에 투자하기도 했던 하나은행 중국법인은 대출 자산이 1년 만에 8.18%나 줄었다. 올 8월 말 기준 하나은행 중국법인의 연체 잔액은 1851억 원, 연체율은 3.01%에 달했다. 각각 지난해 12월 말보다 119%, 92% 급증한 수치다.
중국 내 리스크 관리에 따라 금감원도 바빠지고 있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10일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의 현장 검사에 준하는 밀착 점검을 예고한 바 있다. 금감원은 각 은행의 중국을 포함한 지역별 익스포저 관리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우선 은행별로 글로벌사업총괄 부서 등을 통해 중국 등 해외 점포 자료를 받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현장 검사 시기와 대상을 논하는 것은 아직 무리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산·연체 규모 등을 감안하면 하나은행이 첫 타자가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은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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