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다음 팬데믹에서도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백신을 구걸하고 치료제를 구하러 다니게 될 것입니다. 감염병 백신·치료제 개발 기획과 예산 편성을 전문가와 소관 부처를 중심으로 하도록 거버넌스를 재편해야 합니다.”
정기석(사진)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 위원장은 5일 브리핑에서 ‘백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며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정 위원장은 “20~30조 원의 국산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결국 국산 1호 백신 개발 하나로 끝나버렸다”며 “우리 국민은 그것보다 더 높은 수준을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을 지원해 SK바이오사이언스가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을 개발했지만, 시장성을 잃고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는 데 대한 아쉬움을 지적한 것이다. ★본지 11월 23일자 1·3면 참조
정 위원장은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감염병 대응을 기획하고 예산을 편성해야 다음 팬데믹을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0년간을 돌이켜보면 지금같은 거버넌스로는 앞으로 10년도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보건의료와 감염병에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주무 부처가 로드맵을 수립하고 관련 예산을 총괄 편성하도록 역할을 확대하고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감염병 관련 국가 R&D 예산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편성한 뒤 질병관리청으로 이관하는 절차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방역 당국 관계자도 “질병관리청이 R&D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 보니 백신·치료제 개발 예산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초대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했던 정 위원장은 “감염병 관련 R&D 예산을 질병관리본부가 결정하는 게 아니고 다른 부처에서 결정한 후 일괄적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며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많이 모여있는 부처가 주무 부처가 돼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 주무부처를 도울 수 있는 많은 전문가들이 협심을 해 다가올 미래 감염병에 대비하는 R&D 예산을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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