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비롯한 산유국들의 대규모 감산 유지와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완화, 서방의 러시아 원유 가격상한제 도입 등으로 원유 공급이 줄고 수요는 늘면서 국제유가를 밀어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짙어지고 있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은 당분간 유가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현재 배럴당 80달러 선에 머무는 국제유가가 내년에 11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4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OPEC과 러시아 등의 협의체인 ‘OPEC+’는 이날 정례 장관급 화상회의를 열어 10월 회의에서 합의했던 하루 200만 배럴 감산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OPEC+는 10월 회의 당시 11월부터 감산에 돌입해 내년 말까지 유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날 결정은 실제 감산에 돌입한 지 한 달여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유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일단 정책 변경 없이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OPEC+의 정례 장관급 회의는 내년 6월로 예정돼 있고 긴급 회의 소집 권한을 가진 OPEC+ 모니터링위원회도 내년 2월에야 열릴 예정이어서 당분간은 감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5일부터 유럽연합(EU), 주요 7개국(G7), 호주 등이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 시행에 돌입한 점도 공급을 제약할 수 있는 요인이다. 서방 주요국들은 배럴당 60달러가 넘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보험·운송 등 해상 서비스를 이날부터 금지했고 이와 별도로 EU는 러시아산 원유의 해상 수입도 이날부터 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공급을 줄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부총리는 타스통신에 “생산량을 줄이더라도 우리와 협력할 국가에만 석유와 석유 관련 제품을 판매할 것”이라며 “가격상한제는 원유 공급 부족을 촉발해 에너지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로 인해 러시아의 원유 수출량이 하루 최대 100만 배럴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완화에 따른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은 원유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이른바 ‘백지 시위’로 민심이 들끓자 중국 정부는 ‘제로 코로나’ 기조를 서둘러 전환하고 있다. 이달 2∼4일에는 베이징·톈진·충칭·상하이 등 4대 직할시 외에 스자좡·광저우·하얼빈·정저우 등이 대중교통 이용 시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 결과 의무를 폐지하는 등 방역 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4일 기준 중국 본토의 신규 감염자도 2만 9171명으로 2만 명대로 떨어지며 1주일 연속 감소하자 중국의 본격적인 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글로벌 IB인 UBS는 “중국의 수요 회복 등으로 국제유가가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국제유가도 꿈틀대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달 25일 배럴당 76달러까지 떨어지며 2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지난주 4.9% 오르며 한달래 최대 주간 상승 폭을 기록했다. 5일에도 1% 이상의 상승세를 기록하며 배럴당 80달러대를 회복했다. 브렌트유도 5일 1% 이상 올라 86달러대까지 상승했다.
주요 IB들도 국제유가 상승을 예상하고 있다. BoA는 “올해 주요 국제유가의 평균 가격은 배럴당 101달러였고 내년에도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면서도 “휘발유 수요가 많은 시기에는 브렌트유가 11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또 “러시아의 감산 가능성, 리비아·이라크 등의 지정학적 불안정까지 유가를 밀어올릴 요소가 많다”며 추가 상승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UBS는 “EU는 내년 2월부터 러시아산 원유뿐 아니라 석유 제품 해상 수입도 금지할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큰 공급 충격이 있을 것”이라며 “브렌트유가 향후 수개월간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유럽 중앙은행의 긴축 속도 등에 따라 유가의 단기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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