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신나는 도전이 3경기가 아닌 4경기로 마무리됐다. 월드컵 16강 진출 숙원을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12년 만에 이뤄낸 한국 축구의 중심에는 에이스에서 정신적 지주로 발돋움한 손흥민(30·토트넘)이 있었다. 남아공 다음인 2014 브라질 대회부터 월드컵에 나온 손흥민은 세 번째 월드컵에서 마침내 16강 경기를 경험했다. 부상으로 월드컵 참가 자체가 불투명했었는데 최악의 상황을 돌파해 한국 축구에 빛나는 유산을 남겼다. 지난달 14일 카타르 입성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벤투호’의 23일을 손흥민의 ‘말’로 돌아봤다.
◇“1%의 가능성만 있다면 달려가겠다”=공중볼을 다투다 상대 수비수 어깨에 강하게 부딪혀 코피를 쏟은 게 지난달 2일이었다. 안와 골절이라면 3주 뒤 첫 경기를 치러야 하는 카타르 월드컵은 사실상 어렵다는 전망이 돌았다. 검진 결과 안와 골절이었다. 한국 축구에는 청천벽력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절망을 말할 때 손흥민은 오히려 의지를 불태웠다. 구단에 요청해 날짜를 하루 앞당겨 4일 수술을 받았다. 그러고는 9일 인스타그램에 이런 출사표를 적었다. ‘여러분이 참고 견디며 써온 마스크를 생각하면 월드컵에서 쓸 제 마스크는 아무것도 아니다. 1%의 가능성만 있다면 앞만 보며 달려가겠다.’
◇“맞으면 맞는 거다”=수술 뒤 불과 20일 만에 나선 첫 경기 우루과이전(0 대 0 무)에서 손흥민은 상대 수비에 발 뒤를 밟혀 축구화가 벗겨지고 양말까지 찢어졌다. 마스크를 쓴 불편한 상태로 거친 몸싸움을 벌이는 것도 고역이었다. 손흥민은 그러나 “맞으면 맞는 거다. 축구를 하다 보면 맞기도 하고 때리기도 한다. 두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승리 못 챙겨줘 미안하다”=‘1승 제물’로 여겨졌던 가나에 2 대 3으로 진 날 손흥민은 스스로 책임을 떠안았다. “저 개인적으로도 잘하고 선수들을 잘 이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 아프다”고 자책하면서도 “동료 선수들은 지금처럼만 잘해주면 주장으로서 정말 고마울 것 같다”고 팀원들을 감쌌다. 조규성(전북)을 언급하면서는 “좋은 결정력으로 2골을 넣고 동점까지 만들었는데 승리를 못 챙겨줘 팀원으로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앞선 두 번의 월드컵에서 손흥민은 2차전 패배 때마다 눈물을 보였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머릿속으로 다 계산하고 플레이한다”=가나전 뒤 손흥민의 경기력을 놓고 일각에서 비난이 나왔다. 포르투갈과 3차전(2 대 1)은 이에 대한 반박이었다. 손흥민은 70m 단독 드리블로 상대 선수들을 유도한 뒤 후반 46분 수비 다리 사이로 패스를 넣어 황희찬(울버햄프턴)의 역전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기적의 16강행을 이끈 뒤 손흥민은 “TV로 보실 때는 저희가 안 보고 패스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실 텐데 그런 상황을 다 읽는다”고 설명했다.
1차전에 앞서 “너희는 정말 잘하는 선수들이다. 너희 능력을 믿어도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줬던 손흥민은 한국의 16강 여부가 결정되는 가나-우루과이전 결과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올라갈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를 동료들과 나눴다고 한다.
◇“대표팀서 필요로 한다면 이 한 몸 바칠 것”=불편한 보호 마스크를 끼고도 4경기 모두 풀타임을 뛴 손흥민은 1도움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월드컵 통산 득점은 3골을 유지했다. 브라질과 16강(1 대 4 패) 뒤 “응원해주신 것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너무 죄송스럽다”고 밝힌 손흥민은 “많은 응원으로 예전에 받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해주신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4년 뒤 2026 북중미 월드컵에 대해서는 “능력이 돼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대표팀에서 저를 필요로 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이 한 몸 바칠 생각”이라는 말로 사실상 네 번째 월드컵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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