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인도 1·2위 이동통신 사업자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 수주에 성공하며 글로벌 통신 장비 시장에서 입지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인도는 현재 통신 가입자가 11억 7000만 명에 달한다. 2023년 중국을 제치고 인구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돼 그 성장성은 중국보다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일본·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5G 장비 수주 소식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중국과 인도의 관계 악화를 파고들어 삼성전자가 5G 장비 시장에서 업계 1위 화웨이의 점유율을 상당 부분 뺏어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9일 시장조사 기관 델오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5G 통신 장비 시장 점유율은 화웨이(28.7%), 에릭슨(15%), 노키아(14.9%), ZTE(10.5%), 시스코(5.6%), 삼성전자(3.1%) 순이었다. 탄탄한 중국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화웨이와 ZTE가 선전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6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인도가 5G 도입을 시작한 올해부터는 순위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인도의 외교 관계 악화로 업계 1위 화웨이가 인도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탓이다. 실제 인도 통신 업체들은 5G 장비 도입 과정에서 화웨이·ZTE를 배제하고 에릭슨·노키아·삼성전자만을 택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번 릴라이언스지오 5G 장비 공급 계약에도 화웨이 배제의 반사 효과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화웨이는 중국 내수 매출을 제외할 경우 실제 글로벌 점유율은 18%대로 떨어진다”며 “인도 시장에 진출하는 3사(에릭슨·노키아·삼성전자) 점유율이 대폭 올라 지형도가 뒤바뀔 수 있다”고 했다.
릴라이언스지오는 1위 사업자인 만큼 5G 도입에서도 인도 내 사업자 중 가장 빠른 전국망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적극적인 현지 시장 공략을 위해 최근 인도 타밀나두주 첸나이에 680억 원가량을 투자해 장비 공장을 지을 계획으로 전해졌다. 인도 정부의 생산연계인센티브(PLI) 제도에 발맞춘 행보다. 인도 정부는 현지 생산 장비에 대해 투자액의 4~7%를 세금 감면해주고 있다.
인도가 단순한 인구 대국일 뿐 아니라 인구밀도가 높다는 점도 기회다. 대신증권은 최근 5G 네트워크 시장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5G 인프라 도입은 국가 면적보다 인구와 더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며 “미국과 중국 면적이 비슷하지만 중국의 도입 속도가 더 빠른 데는 인구밀도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과 유사한 형태의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져 장비 업체들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최근 들어 인도 외에도 글로벌 각지에서 수주 소식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만 한정해도 3월 일본 NTT도코모와 5G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이어 11월에는 장비 공급 확대 소식도 알렸다. 5월에는 미국 제4이동통신사업자 디시 네트워크에 5G 가상화기지국(vRAN) 등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어 9월에는 현지 1위 케이블 사업자 컴캐스트의 5G 솔루션 공급사로 선정됐다. 시계를 돌리면 2020년 미국 버라이즌, 캐나다 텔러스, 2021년 영국 보다폰, 일본 KDDI, 베트남 비엣텔 등 굵직한 공급 사례가 수두룩하다.
5G 후발 주자들의 인프라 보급이 본격화하고 수주가 이어지며 삼성전자 MX(모바일경험) 사업부 실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침체 여파로 올해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지난해보다 축소되고 있고 내년 시장 전망도 어두운 와중에 5G 네트워크 장비가 뒤를 받쳐주는 덕이다. 실제 올 3분기 삼성전자 네트워크 매출은 1조 29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 800억 원보다 19.4% 급증했다.
5G 장비 공급과 매출은 단발로 끝나지 않고 유지 및 보수까지 지속적인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8월 인도 2위 사업자 에어텔에 5G 기지국, 다중 입출력 기지국 등을 제공하고 유지 보수를 맡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릴라이언스지오와 삼성전자 계약도 에어텔과 비슷한 구조일 공산이 크다.
내년에는 코로나19로 최근 2년간 하락세던 미국 통신사들의 5G 투자도 다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2020년 버라이즌과 8조 원대 계약을 맺었지만 투자 지연으로 매출 반영이 늦어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내년 5G 통신 장비 시장에서 두 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박장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수급난 등으로 지연됐던 북미 5G 투자가 재개되고 컴캐스트·디시네트워크 실적도 내년부터 반영될 것”이라며 “인도를 포함한 납품처 다각화와 북미 투자 재개로 내년 네트워크 장비 분야에서 좋은 실적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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