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 A씨가 비숑 프리제를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에 버렸어요. 갓 3개월 된 어린 녀석인데 갈비뼈 4개가 부러지고 안구가 파열된 상황. 동물권단체 케어가 다행히 학대범을 찾아서 경찰에 고발했고, 비숑 프리제에 대한 소유권 포기 각서도 받아냈어요. 지난 8월에 생긴 일이에요.
알고 보니 비숑 프리제 이전에 키웠던 개는 한 시간 동안 비명을 지르다가 죽어서 묻혔대요. 케어가 추가로 고발했고, A씨는 지난 1일 벌금형 처분을 받았어요. 그러나...A씨는 최근 프렌치불독 강아지를 사서 기르기 시작했다고(자세한 이야기는 케어 인스타에서, 슬픔과 분노 주의).
학대범이 다른 동물을 사도 OK?
여기서 뭐가 제일 문제인지 용사님들 눈치챘을 거예요. 학대범이 다른 동물을 사거나 입양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 올해 4월 26일 국회를 통과한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2023년 4월 27일부터 시행)에도 ‘동물학대범의 동물 사육 금지’에 대한 내용이 없어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의 대표이기도 한 서국화 변호사님이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하는 이유.
지난 4월 통과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31년 만에 전면 개정된 만큼 그래도 많은 진전이 있었어요. 그리고 ‘사육금지 조항’도 원래는 포함돼 있었는데...막판에 빠졌어요. 학대범이 더 이상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건 너무나 상식적이고도 중요한 조치인데 말예요. 서 변호사님(사진)이 설명해 준 과정은 이래요. 정말 어려운 이야기였는데 요약하자면 법 체계, 또 각 기관의 역할을 감안했을 때 말도 안되는 문제 제기는 아니래요.
“초안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동물학대 유죄 판결을 받은 자에게 이 처분을 내리면 법원이 명령한다’는 문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국회를 거치면서 문제 제기가 나왔죠.
예를 들어 법적으로 ‘뭘 하라’는 처분은 할 수 있는데 ‘뭘 하지 말아라’는 처분은 너무 범위가 넓어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ex. 동물 사육 금지에 포유류만 포함되는지 어류·양서류도 포함되는지 등). 그리고 형은 검사가 구형하고 집행한다는 원칙이 있는데 왜 지자체가 끼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고요. 그래서 국회에서 조율을 해 보려고 간담회도 열었는데 의견이 모아지질 않았어요. 이대로는 동물보호법 개정안 자체가 통과되지 못할 수 있어서, 결국 사육금지 조항을 빼고라도 통과를 시킨 거죠.”
여기까지 변호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죄형법정주의, 형사법 체계 등등 익숙치 않은 말들이 난무했고 다 옮기자면 2000자쯤 더 써야될 것 같으니까 이 정도로만 정리할게요. 그렇지만 ‘법 체계’란 관점에서 기존 법과 상충되는 측면이 없느냐, 법률 세계의 논리에 부합하느냐, 같은 문제는 법을 만들고 고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당연히 여기에서 포기해야 된다는 말은 아니에요. 왜 사육금지 조항이 절대로 필요한지 변호사님의 말씀 더 옮겨볼게요.
“형법에서는 한 번 범죄를 저질렀다고 관련된 행위를 아예 금지하진 않아요. 예를 들어 차를 몰다 인명사고를 냈다고 해서 차 운전을 금지하지는 않는 것처럼요.
그런데 동물 학대 범죄를 저런 범죄와 똑같이 두고 보면 안 돼요. 왜냐면 동물 학대는 반복되기 쉽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죄이며 다른 약자(아이·여성·노인 등)에 대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거든요.” 제프리 다머, 강호순 같은 국내외 연쇄 살인범들의 사례처럼요.
사육금지, 가보자고
그래서 PNR은 법원, 검찰 출신 실무자들의 의견을 모아서 형사법상 사육금지 조항이 가능한 근거를 제시할 계획이라고 해요. 우리와 법 체계가 똑같은 독일 동물보호법에도 이미 사육금지 조치가 들어 있거든요.
동물학대자의 사육금지 문제는 예전에 지구용에서도 다룬 민법 개정안(법적으로 ‘물건’인 동물에게 생명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한다는 내용 다시 읽기)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요. 현재 우리나라 법에서 사육금지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동물학대행위자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거든요. 이게 뭔 말이냐면, 동물=재산이니까 누군가의 재산권(동물을 소유할 권리)을 침해할 수 있단 이유로 사육금지가 빠졌단 거예요.
서 변호사님은 “가지지 못하게 한다는 건 기본권 제한일 수 있긴 한데, 생명체니까 다르게 봐야 하잖아요. 그게 상식적인 거죠. 그런데 법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민법과 헌법에는 동물권에 대한 조항이 없어요. 동물권과 재산권 둘 다 법적 권리라면 두 기본권의 충돌 사이에서 한쪽 편을 들어줄 수 있지만 지금은 동물권 편을 들고 싶어도 법적인 근거가 없는 거예요.”
희한한 법의 세계...! 우리의 상식과는 좀 다르죠? 변호사님도 “법이 상식적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고 한숨을 쉬시더라고요.
스위스·독일·에콰도르 등은 아예 헌법에 동물권이 명시돼 있대요. 예를 들어 독일의 헌법에는 “국가는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생명의 자연적 기반과 동물을 보호할 책임을 갖는다”는 문구가 담겨 있다고. (참고로 그럼 헌법부터 고치지 왜 민법개정안이 더 이슈화되느냐, 고 여쭤봤더니 헌법을 고치기는 어렵지만 민법은 조금 쉽다는 설명. 근데 그나마도 국회에서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변호사님은 “동물권이 침해되는 곳에는 반드시 인권 침해가 있다”고 하셨어요. 예를 들어 도축장, 실험실에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요. 그래서 동물권이니 인권이니 우선순위를 따지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동물권이 지켜지면 자연스럽게 인권에 대한 민감도도 올라간다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읽으면서 답답하셨죠? 생각해보면 꼭 동물권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많은 분야에서 무슨 법을 고치고 만들고 철폐하란 주장이 참 많긴 해요. 결국에는 법으로 명시가 돼 있어야 세상이 변하니까요. 다행히 동물들에겐 PNR이란 어벤저스(!)들이 있는 셈이에요. 더 활발한 활동을 위해 후원과 관심으로 응원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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