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술 마시며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무실 곳곳에 술병이 늘어서 있고, 한쪽에는 술잔이 종류별로 놓였다. 상사 불호령이 떨어질 장면이건만 현실은 반대다. 술독을 파고들수록 칭찬받는 주인공들은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이 올 11월 신설한 주류 태스크포스팀(TFT)이다. 코로나 19를 계기로 홈술족이 늘고 취급 품목이 다양해지며 술이 편의점의 매출을 견인하자 기존 음용식품팀에 있던 주류 파트를 빼내 강화한 조직이다.
“술에 있어서는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하는 남자 넷이 모였습니다.” ‘편의점업계 주(酒)도권 장악’이라는 중책을 맡은 이승택(사진) TFT팀장은 최근 서울경제와 만나 팀원들의 전문성과 술 사랑을 강조하며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주종(酒種)이나 상품을 꾸준히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팀장은 2007년 BGF리테일에 입사해 점포관리와 영업·경영기획, 음료 MD를 거쳤으며 2017년 11월부터 주류 MD로 활약해 왔다. 그는 편의점 주류 전쟁의 시발점이자 지난해 최대 히트작인 ‘곰표 밀맥주’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CU는 물론 업계 맥주·소주 부문에서 손 꼽히는 전문가인 그를 회사가 TFT 팀장으로 발탁한 것도 남다른 기획력과 성공 사례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하는 3인도 술에 대한 애정으로는 어디 가서 안 빠지는 사람들이다. “한 팀원은 위스키랑 희귀주를 좋아하고, 그쪽에 전문 지식이 많아요. 집에 홈바를 만들었는데, 거기 있는 술만 7000만 원이 넘을 겁니다.”
그 애정이 곧 업(業)이기에 회의 때는 독주(毒酒)만큼이나 세고 뜨거운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 팀장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보니 팀 회의를 하면 정말 냉철한 의견이 오간다”며 “주류팀 때부터 솔직하게 비판할 것은 해왔고, 여전히 그런 분위기가 좋다”고 웃어 보였다.
그렇다고 TFT가 술 마시며 일하는 ‘팔자 좋은 직업’인 것은 아니다. 코로나 19로 편의점의 주류 매출 신장률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업계의 제품·아이디어 선점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가뜩이나 신상 출시 주기가 짧은 편의점 시장에서 ‘잘 되는 시장’의 TFT는 ‘히트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책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품 개발에 머리를 쥐어짜고, 물량 확보를 위한 거래처 관리와 협력사 미팅, 공장·매장·시장 조사, 개인 교육 등도 빈틈없이 챙겨야 한다. “없던 흰 머리가 생길 만큼” 이 팀장의 어깨가 무거워진 이유다. 이런 부담감을 알기 때문일까. 이건준 BGF리테일 사장은 TFT에 “이전보다 더 과감하게 하라”는 이야기를 건넸다고 한다. 든든한 격려에 CU는 주류 TFT 신설 후 적극적으로 신상품을 내놓고 있다. 최근 하이볼을 RTD(Ready To Drink)로 만든 어프어프 하이볼 2종을 출시했는데 이틀 만에 초도 물량이 동나 발주 제한이 걸리기도 했다. 국내 대표 힙합 아티스트인 타이거JK, 윤미래와 컬래버해 단독 출시한 ‘타이거JK맥주’와 ‘미래소주’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팀장은 ‘먼저 시작해 잘 키우는 것’을 TFT가 추구할 주(酒)도권으로 봤다. “곰표 맥주 덕에 ‘수제맥주=CU’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번 하이볼도 새로운 시도였고요. 남들이 안 한 것을 먼저 시작해 이걸 잘 키워가고 싶습니다.” 새 주종 발굴 외에도 그동안 공들여 내놓은 독도 소주와 시그니처 와인 브랜드 mmm!(음!) 등 기존 상품의 리뉴얼과 품목 확대 등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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