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 유행하는 '트윈데믹'에 대비해 개발된 동시진단키트 중 대다수가 '동시'가 아닌 '순차' 검사 제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코로나19 진단키트와 독감 진단키트를 묶음 포장한 것이어서 향후 건강보험이 적용될 경우 건보 재정 낭비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1일 업계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현재까지 코로나19-독감 동시진단 시약으로 정식 국내 허가된 제품은 총 21개다. 이 중 유전자증폭(PCR) 검사방식의 진단시약은 11개, 전문가용 항원키트 방식이 10개다. 보건당국은 9월부터 본격적으로 항원 방식 코로나19-독감 동시 진단키트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 중이다. 10월 임숙영 중앙방역대책본부 상황총괄단장은 "현재 (호흡기 환자들이) 독감 검사와 코로나19 검사를 2번 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며 "동시진단키트의 보험급여에 대한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접수 후 결과가 100일 이상 소요되는데, 현재는 전문평가위원회 심사 단계에 있다.
문제는 보험급여 도입 취지에 맞게 간편하게 한 번만 검체를 떨어뜨려 한 스트립에서 코로나19와 A·B형 독감을 동시에 검출할 수 있는 제품은 10개 중 2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올해 2월 15일 처음 항원 방식 품목허가를 획득한 피씨엘(241820)의 'PCLOK II ABC'와 4월 11일 허가된 젠바디의 '젠바디 인플루엔자/COVID-19 Ag 트리플'이 대상인데, 그 중에서도 별도의 장비를 통해 판독 장비가 필요가 없는 제품은 젠바디의 진단키트 뿐이다. 젠바디의 진단키트는 한 스트립 위 4줄의 마커가 나타나도록 만들어 코로나19, A·B형 독감 3가지를 구분해 동시에 검사한다.
반면 나머지 8개 제품은 '한벌 조합 구성' 제품이다. 기존에 허가받은 코로나19 키트와 독감 키트의 디바이스를 붙이거나 심지어는 각각의 키트를 포장만 묶어 판매하는 제품이다. 통상 진단업계에서는 이 같은 한벌 조합 구성 제품을 '듀오(DUO)'로, 여러 질병이 한번에 검출되는 제품을 '콤보(COMBO)'로 칭한다. 새로운 기술인 콤보는 수억~수십억 원을 들여 새로운 임상시험을 거쳐 품목허가를 받는 데 비해 듀오 제품은 별도 임상 없이 신청 후 10일이면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식약처 허가 분류상에 듀오와 콤보는 구분이 없어 보험급여 적용은 한 데 묶여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A 진단기업 관계자는 "빠른 시장 진입을 위해 듀오 제품을 먼저 출시하는 마케팅 전략이 코로나19-독감 동시진단 시장에서도 나타났다"며 "아주 어려운 기술이 아닌데도 듀오 제품들이 더 뒤늦게 승인된 걸 보면 후발 주자들이 급하게 준비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한벌 조합 구성 즉, 듀오 제품들은 급여 적용 검토가 시작된 9월 이후에만 8개 중 7개 제품이 줄줄이 허가를 받았다. 한편 전세계 신속항원진단 1위 기업인 에스디바이오센서(137310)는 콤보 방식의 제품을 개발해 수출 중이며 아직 국내 허가는 받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자 정부의 불분명한 동시진단 기준에 건보 재정만 낭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임상 시험도 거치지 않은데다 기술적 강점이 없는 '포장 갈이' 제품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진단 비용은 독감진단의 비급여 비용 3만 원과 전액 정부 부담인 코로나19 검사 금액 사이에 책정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유전자증폭(PCR) 단독 검사에 1조 4704억 원, 신속항원검사에 1조 469억 원의 건보 재정이 쓰였고, 내년에도 총 6900억 원이 편성돼 있다.
B 진단기업 관계자는 "기술 수준과 임상 비용이 다른데 같은 급여를 적용받으면 누가 앞으로 앞서 개발하려 하겠나"라며 "당국의 미비한 규정 탓에 건보 정이 기업 마케팅의 먹잇감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강제성은 없지만 현재도 동시진단 제품 중 한벌 조합 구성은 제품명에 'DUO'를 표기해달라고 안내하고 있다”며 "시장에서 콤보 제품과의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 사용자들에게도 차이를 안내하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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