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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주현 원장 "경제 안보 위해서라도, 배터리 등 첨단산업 국내기지 더 늘려야"

[서경이 만난 사람-주현 산업연구원장]

■대담=이상훈 경제부장

기술·제조 역량 국내에 남겨두며 확장해야 '전략적 가치' 커져

바이오·AI·UAM 산업에도 적극 투자 '포스트 반·배'로 키워야

印尼 등 아세안 에너지·자원 넘쳐…관계 강화하고 시장 개척을

주현 산업연구원장이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신문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경제 안보를 위해서라도 반도체·2차전지 등 첨단 산업의 핵심 역량은 국내에서 더 키워나가야 합니다. 경제 안보를 단순히 서플라이 체인(공급망) 확보로만 봐서는 곤란합니다. 첨단 산업 공장이나 팹 등을 해외로 내보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첨단 기술 연구 및 제조 역량은 계속해서 국내에 남겨두면서 확장해야 글로벌 산업계에서 우리의 전략적 값어치가 커질 수 있어요.”

내년 한국 경제가 불안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수출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무역 적자 행진은 11월까지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미래 산업이 안 보이는 터에 주력인 반도체가 흔들려 더 걱정이다. 여기에 첨단 기술 패권과 연계된 미중 간 갈등은 글로벌 공급망의 지각변동으로 연결되고 있다. 9일 서울경제 본사에서 만난 주현(사진) 산업연구원장도 “경제와 안보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는 시대에 우리 산업 경쟁력을 위한 전략적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이 기대되는 업종, 그리고 반도체와 같은 국가 전략물자화한 업종에서는 핵심 경쟁력을 국내에서 더 발전시켜나가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며 “정부도 미래 핵심 성장 동력이 될 만한 분야를 지속해서 발굴하고 투자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주 원장에게 우리나라 산업의 나아갈 길에 대해 물어봤다.

주 원장은 경제 안보를 ‘전략적 자율성’과 ‘전략적 불가결성’으로 요약했다. 그는 “일본이 경제안보법을 만들며 구축한 개념인데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주 원장은 “전략적 자율성은 국내에 어느 정도 기반이 있어 외부에서 공급을 차단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능력이고, 전략적 불가결성(없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은 국제사회 전체의 산업구조 가운데 꼭 필요한 분야를 전략적으로 확대함으로써 경제 발전과 국가 안전 보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얘기하면 상대방이 어떤 물품의 공급을 끊었을 때 우리 입장에서 이를 메울 옵션이 있고 또 맞불을 놓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나라가 아니면 안 되는 기술로 존재감을 보여주는 전략인데 전 세계 첨단 칩을 만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제조) TSMC의 존재 자체가 대만의 수호신인 것과 일맥상통하다.

그는 “결국 문제는 우리나라의 전략적 자율성과 전략적 불가결성이 무엇이냐는 것”이라며 “메모리반도체 분야는 우리나라의 전략적 자율성과 전략적 불가결성을 채워주지만 다른 업종은 그렇다고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2차전지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의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는 미국·유럽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며 배터리 공장을 증설하고 있는 반면 국내 공장 증설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주 원장은 “2차전지는 다 현지 생산이기 때문에 반도체와 같은 수출 산업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앞으로 2차전지 산업이 성장할 것인 만큼 국내에서도 공장이 더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주 원장은 “2차전지를 반도체와 같은 경제 안보의 핵심 축으로 만들려면 해외 진출과 국내 공장 증설 등과 관련한 국가적 차원의 고민과 전략이 더 필요하다”며 “첨단 산업의 핵심 역량을 국내에 가지고 있으면서 한국 경제의 무기·담보로 만들 수 있는 것이 경제 안보의 핵심”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공급만 안정되게 만들면 공급망이 안정됐다고 생각하는데 조금 더 전략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며 “TSMC·삼성전자가 해외에 나가면서도 가장 최첨단 노드는 국내에 두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결국 기업 투자가 고용과 세금의 원천이라는 판단과도 맥이 닿아 있다. 주 원장은 “국내 산업이 발전하면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재정도 튼튼하게 된다”며 “우리 유망 기업의 해외 진출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지만 국내에도 핵심 제조는 계속 확충해 명실상부한 말 그대로 우리 산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산업 정책적 관점에서 이런 고민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국내 무역수지가 266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최근 예측했다. 내년도 무역 여건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주 원장은 특히 윤석열 정부가 3대 주력 시장으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동남아(아세안) 시장을 지목하고 중동 등을 주요 전략 시장으로 꼽은 것을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지만 동남아의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8~9%에 이를 정도로 좋다”며 “특히 에너지뿐만 아니라 니켈 등 자원 부국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탄소 중립, 공급망 다변화, 시장 개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가 있는 만큼 관계를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경제가 어려울수록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주 원장은 “지금처럼 그 어느 것도 예상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시절이 있었나 싶다”며 “정부가 미래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짚었다.



바이오와 같이 이제 막 시장이 열리는 신산업이나 인공지능(AI), 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같은 아직 기술 개발 중이지만 유망한 분야에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원장은 “앞으로의 우리 먹거리는 지금 봤을 때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예측도 못한 산업이 될 수도 있다”며 “2차전지만 해도 4~5년 전까지만 해도 이만큼 클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기술이 성숙하지 않고 이제 막 시장이 열려 우리가 곧 따라잡을 수 있는 분야에 더 신경 써야 한다”며 “지금 잘하고 있는 반도체 지원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미래에 우리 산업을 이끌 수 있는 포스트 반도체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은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주는 게 정부가 강조하는 민간 주도 성장”이라고도 했다.

보조금 지원 등과 같은 일회성 지원보다는 기업들이 마음 놓고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주 원장은 “우리 기업이 이미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만큼 정부는 규제 혁신 등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기업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재정을 통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연구개발 지원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래 산업 발굴에 스타트업이 빠질 수 없다. 역대 정부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 공을 들였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이에 따른 세계 주요 국가의 양적완화는 스타트업에 단비와도 같았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인플레이션과 긴축으로 돈줄이 마르며 창업 환경은 크게 악화하는 상황이다. 일부 기업은 부실화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등 옥석 고르기가 한창이다. 이 부분에서도 정부 역할이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주 원장은 “경제 여건이 악화할 때는 기왕 구축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자본시장이 위축될 때 모태펀드 등 정부의 벤처 투자 자금이 마중물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주목해야 할 신산업으로 핀테크·메타버스·바이오와 함께 AI, 로보틱스, 스마트 모빌리티, 에너지를 꼽았다.

신산업은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무역 장벽을 뚫을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1990년대 삼성전자의 D램 반도체, 2000년대 LG화학의 2차전지 개발은 경쟁국보다 차세대 기술을 먼저 개발해 시장 우위를 선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원장은 “각국의 자국 중심·보호주의 흐름이 거세지더라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으면 이를 돌파할 수 있다”며 “전 세계가 디지털·그린 전환에 나선 만큼 우리나라는 이 거대한 파도를 피하지 말고 다른 선진국보다 선제적으로 나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우영탁기자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61년 서울 △1980년 서울 환일고 △1984년 서울대 경제학 학사 △1991년 서울대 경제학 석사 △2006년 서울대 경제학 박사 △2006년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실 실장 △2013년 산업연구원 산업경제연구실 실장 △2016년 산업연구원 부원장 △2017년~2018년 대통령비서실 중소기업비서관 △2018년~2019년 대통령비서실 중소벤처비서관 △2021년~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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