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사용량은 경기 판단 시 일종의 선제 지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경기 침체 징후로 볼 수 있습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전력사용량이 전년 동기 대비 두 달 연속 감소한 것과 관련해 경기 침체 가능성을 우려했다. 지난달 전력거래량은 4만 3077GWh로 두 달 연속 전년 동기 대비 줄었다. 전기차 보급 증가 등 전력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전력사용량이 줄어든 것은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 전체 전력 사용분의 55%는 산업용이다. 제조업 전반에 먹구름이 끼였다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국내에서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5개 대표 기업은 연간 18.41TWh의 전력을 사용하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9.21TWh), 현대제철(7.04TWh), 삼성디스플레이(6.78TWh), LG디스플레이(6.23TWh) 순이다. 우리 경제의 주축이라 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은 대표적 전력 다소비 산업으로 불황을 맞고 있다. 연쇄적인 전력 수요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SK하이닉스는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의 절반 수준인 10조 원 미만으로 잡고 있으며 감산에도 나섰다. LG디스플레이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용 패널을 비롯해 일부 제품 감산을 계획하고 있다.
거시 지표는 명확히 경기 불황을 가르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을 비롯한 10월 광공업 생산은 전월 대비 3.5% 줄었다. 올 7월부터 넉 달째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좋지 않다. 10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전월 대비 2.7%포인트 감소한 72.4%에 그쳤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위축됐던 2020년 8월의 70.4% 이후 2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평균 가동률은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제품 출하량에서 재고가 차지하는 비율인 ‘제조업 재고율’이 지난해 10월 117.2%에서 올 10월 122.1%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물건을 만들어도 판매할 곳이 마땅치 않아 창고에 쌓아둔 제품이 늘고 있으니 공장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주춧돌인 수출 하락세가 가팔라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나 줄었다. 월간 수출은 올 10월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이어 11월에도 감소 폭이 14.0%에 달해 석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국개발연구원(KDI, -3.7%) 등은 내년 설비투자 감소를 예측하고 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곳곳에서 제기되는 데다 수출 또한 줄고 있어 국내 기업의 공장 가동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태풍 피해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진 포스코의 사례 등이 복합적으로 전력사용량을 끌어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 속에 전기요금 인상 추이는 제조업의 어려움을 한층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 10월부터 전력량요금(1㎾h당 2원 50전)과 실적연료비 인상분(1㎾h당 4원 90전)을 포함해 1㎾h당 총 7원 40전의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특히 대규모 전력 사용 사업자 대상의 요금은 추가 인상했다. 전기요금 인상이 기업의 원가 부담을 높여 공장 가동률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내년에 전기요금의 급격한 상승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의 막대한 부채를 감안하면 내년 초 50~60% 수준의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 사채 발행 한도를 현행 대비 최대 6배까지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도 전기료 인상 폭을 더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국회가 조속히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입장이지만 한전의 자금 경색이 심각하다는 여론 속에 정부도 전기요금 인상에 전향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국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컨센서스는 이뤄진 상태”라며 “정부로서는 내년 하반기가 되면 2024년 총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가급적 상반기에 요금을 크게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부담을 덜어줄 다른 정책적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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