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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빅딜 예고 2년 째…무소식인 삼성전자

ARM 지분 투자 검토 접어

'9조' 하만 인수 이후 신중론

반도체 사업 투자 경쟁 심화

하만의 지난 2021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공개한 디지털 콕핏(편의기능) ExP 솔루션/사진제공=하만




삼성전자(005930)가 3년 내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예고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움직임이 없어 새로운 기업 인수보다는 기존 사업에 대한 투자에 전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장기간 다양한 검토를 거쳤지만, 오르내리는 기업가치와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투자 수요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후자에 더욱 힘을 싣는 분위기다.

1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 암(ARM)에 대한 상장 전 지분투자를 검토했으나 최근에는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ARM의 최대주주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직접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공동투자 방식으로 투자유치를 벌였지만, 삼성전자는 물론 인텔과 퀄컴, SK하이닉스도 투자의지가 크게 떨어졌다. 지난 2월 “ARM인수 컨소시엄이 생긴다면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던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는 지난 9일 삼성전자를 찾아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경계현 부문장(사장)과 TV와 모바일, 생활가전을 아우르는 디바이스 경험(DX)부문 김우준 네트워크 사업부장(사장)을 만난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은 9일 오전 중동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으나 두 사람의 회동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업계는 2016년 하만(Harman) 인수 이후 잠잠했던 삼성전자의 빅딜 가능성이 흘러나온 것은 지난해 부터다.

한종희 DX부문 부회장은 올해 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 “부품과 완제품(세트) 모두에서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고 있다”며 대형 인수를 예고했고, 2021년 초 당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이던 최윤호 삼성SDI사장은 “향후 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M&A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는 어느 기업보다 인수를 위한 많은 검토를 하고 있다"면서 “가장 까다로운 거래인 반도체 분야 M&A다 보니 기회를 잡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6년전 9조원에 달했던 전장 부품기업 하만을 인수할 때는 당시 존재했던 미래전략실과 실리콘밸리를 기반으로 한 전략혁신센터가 주도해 비밀리에 이뤄졌다. 2015년 전장사업을 새 먹거리로 삼아 전장사업팀을 신설하는 등 새로운 분야 진출에 동력이 실렸던 시기다.

당시 하만 인수를 통해 전장 사업에 들어서고, 반도체와 완성품(세트) 사업부와 시너지를 내겠다던 전략이 아직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그룹의 M&A는 더욱 신중 모드로 돌아서게 됐다. 하만은 인수 후 5년째 실적이 내리막을 걷다가 지난해 처음 5000억 원의 영업수익을 달성했다.

삼성전자 출신의 한 관계자는 “실리콘 밸리 기반의 외부인사자 주도했던 삼성전자 혁신센터는 본사 조직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됐다"면서 “하만 인수 이후 예상했던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서 주요 인물이 떠났고, 여러 여건상 빅딜 보다는 벤처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기존 사업인 파운드리 투자 경쟁은 격화하고 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하면서 미국에 투자하지 않는 반도체 기업에는 설땅을 주지 않으면서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과 테일러에 앞으로 20년간 총 1676억달러(218조원)을 들여 11개의 반도체 생산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TSMC와 인텔, 마이크론 등도 경쟁적으로 미국 투자에 나서면서 10년간 40개 이상의 반도체 투자 프로젝트에 약 1956억 달러(254조원)을 쏟아붓는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D램 가격이 하락하며 업황이 하락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반도체 수요 자체는 점점 더 높아질 수 밖에 없고, 고사양의 제품이 등장하면 기존 제품의 수요 하락과 별개로 다시 수요 증대가 일어나는 사이클이 반복되기 때문에 업황과 관계없이 연구 개발과 증설을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9% 줄었지만 연구개발 투자액은 14% 늘린 18조 4556억 원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시설 투자에도 29조 1021억 원을 투입했다.

이처럼 증설 경쟁은 반도체 업황 하락기를 가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수십조원이 들어가면서도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대형 M&A에 전념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러는 사이에 하만의 핵심 인물은 물론, 실리콘밸리 등에서 삼성전자로 영입됐던 전문가 그룹도 지금은 많이 빠져나갔다.

다만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회사 NXP 등 일부 회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과거 NPX인수를 추진했지만 가격에 대한 이견으로 무산됐고, 현재 60조원의 기업 가치가 거론되는 NPX는 여전히 하만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M&A 관련 조직도 꾸준히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혁신센터장에 반도체 투자 전문가인 마코 치사리 부사장을 선임했다. 그는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체이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을 거쳐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인 무바달라에서 반도체 투자를 담당했다. 그는 아날로그디바이스의 리니어테크놀로지 인수(147억 달러·19조원)·인피니언의 사이프러스 인수(100억 달러·13조원) 등 대형 거래를 주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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