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을 자제시킴으로써 물가가 오를 때 고통을 덜 받았기 때문에 반대로 공공요금이 정상화되면서 물가가 낮아지는 속도가 더딜 수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정점을 지나 점차 둔화하고 있지만 안정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인 2%를 웃도는 높은 수준이 지속된다면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을 운영하겠다는 방침도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20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자물가는 당분간 5% 내외의 상승률을 이어가겠지만 국내외 경기 하방 압력 확대로 오름세가 점차 둔화돼 내년엔 상고하저의 흐름을 나타내면서 점차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다만 “둔화 속도와 관련해서는 향후 국내외 성장이나 유가 흐름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감산 등 적지 않은 리스크 요인이 잠재해 있고 높은 기대인플레이션이 가격과 임금 결정에 영향을 줘 고물가 지속성을 높일 우려도 있다”라며 “또한 내년 중 전기요금 인상 폭은 그간 누적된 원가 상승 부담이 상당폭 반영되면서 11월 전망 당시 예상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11월 경제 전망 당시 내년 전기요금 인상 폭이 올해 수준만큼 오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보다 큰 폭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대로 물가 둔화 흐름이 빨라질 가능성도 함께 제기했다. 이 총재는 “국제유가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최근 70달러대로 낮아지면서 지난달 전망 당시의 전제치를 상당폭 밑돌고 있다”라며 “국내외 경기 둔화 폭 확대, 부동산 경기 위축 등에 따라 수요 측 하방 압력도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내년 중 물가 상승률이 상고하저 흐름을 나타내면서 점차 낮아지더라도 물가 목표 2%를 웃도는 높은 수준이 이어진다면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영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가 오름세 둔화 속도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만큼 앞으로 발표되는 데이터를 통해 그간 정책이 국내 경기 둔화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 등 주요국 정책금리 변화도 함께 고려하면서 정교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금리 상승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조정과 이로 인한 금융안정 저하 가능성도 살핀다는 방침이다. 이 총재는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금리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주택금융의 구조적 형태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구조적으로 접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라며 “의사가 환자 상태를 보면서 약을 더 써도 될지 판단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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