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존스(70·사진) 한국 RMHC 회장은 소아암 환자들 사이에서 ‘맥도날드 할아버지’로 통한다. 금발에 파란 눈까지 겉모습은 영락없는 외국인이지만, 입에서 나오는 한국말만 들으면 이런 토박이가 또 없다. 어색해 쭈뼛해하던 아이들도 노신사가 ‘반전의 한국말’로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면 어느새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온다. 1980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근무를 시작으로 40년간 한국에 거주한 존스 회장은 2015년부터 8년째 한국 RMHC를 이끌고 있다. 글로벌 비영리 재단인 RMHC는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 체리티(Ronald McDonald House Charities)의 약자다. 주 활동은 병실 구석에서 쪽잠 자는 환아들의 부모가 편히 쉴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1974년 백혈병을 앓는 딸을 돌보며 병원 벤치에서 생활하던 한 미식축구선수가 맥도날드 매장에서 모금활동을 했는데, 이것이 재단 설립의 계기가 됐다.
“전국에 소아암 환자와 그 부모를 위한 시설 총 6곳을 지으면 은퇴할 겁니다.”
지난 20일, 존스 회장이 스스로에게 과제를 주며 은퇴를 이야기한 곳은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 내에 자리한 2층 건물이다. 2019년 우리나라에는 처음 문 연 로날드 맥도날드하우스 1호점이다. 맥도날드를 최대 후원사로 둔 RMHC는 지금까지 세계 60여 개국에 375개의 집을 지었는데, 한국에는 양산에 이어 서울에 두 번째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존스 회장은 하우스의 의미를 단순한 공간의 제공이 아닌, 치료에서 찾았다. 그는 “아이가 아프면 부모들이 힘들어지고, 결국 아이가 자책하게 된다”며 “환아 부모가 편안하게 먹고, 자고, 씻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이의 치료를 돕는 길”이라고 말했다.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는 일종의 무료 쉐어하우스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 곁을 떠날 수 없는 부모들이 머물며 공용 부엌과 세탁실, 객실을 이용한다. 1호 하우스는 총 3층(복층 포함), 10개 객실 규모로 운영되는데, 부모들을 위한 요가 수업부터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 영화관도 있다. 올해 10월까지 총 226가족이 하우스를 거쳐 갔다.
2호 서울 하우스도 짓는다. 이를 위해 내년 초 어린이 병동 규모가 가장 큰 서울대병원과 부지 매매 계약을 맺고, 100객실 규모의 하우스 건설을 추진한다.
세계적인 기업을 최대 후원사로 두고는 있지만, 건물 한 채 짓고 운영하는 데 드는 돈은 어마어마하다. 기부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프로젝트인 셈이다. 존스 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그러나 ‘일방적으로 받지 않는다’다. 그는 재단과 하우스의 안정적인 운영 비결을 묻자 “구걸(begging)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예컨대 한국 RMHC는 식품 회사가 대형 유통 채널에 입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물건이 팔릴때마다 수익의 1%를 받는 방식으로 운영비를 모은다. 현재 SPC 던킨도너츠와 롯데제과, LG생활건강 등이 한국 RMHC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
기업만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맥도날드도 하우스 운영비에 기부금을 보내는데, 올해도 5억 2000만 원이 전달됐다. 이 돈은 맥도날드의 연말 연초 한정 판매 상품인 ‘행운버거’와 ‘해피밀’ 구매 시 각각 100원, 50원씩 적립하는 방식으로 모은다. 존스 회장은 “한 곳의 하우스를 짓기 위해서는 20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하다”며 “물건을 구매하면 기부금이 자동으로 발생하는 ‘착한소비 기부’에 이웃들도 적극 동참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서울뿐 아니라 대구와 울산, 광주 등 광역시에도 하우스를 짓고 싶다”며 남은 과제에 대한 의욕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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