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발표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글로벌 긴축 여파가 내년 경제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국가채무가 1000조 원 넘게 불어난 탓에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여력도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활력 제고를 골자로 한 내년도 예산안과 세제 개편안이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며 정부의 정책 집행 동력도 약해지고 있다.
산적한 악재에 정부는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6%에 그칠 것이라는 냉철한 전망을 내놨다. 매 연말 정부가 발표한 이듬해 성장률 전망치 중 가장 낮다. 1960년대 기획재정부 전신인 경제기획원이 다음 해 경제 전망 발표를 시작했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부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어두운 경제 전망을 내놓은 셈이다.
이는 한국은행(1.7%), 한국개발연구원(KDI·1.8%) 등 국내 주요 기관이 발표한 전망치 중에서도 가장 낮다. 통상 정부는 정책 기대 효과를 반영해 타 기관보다 높은 전망치를 내놓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세계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는 만큼 지금까지 나타난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솔직하고 객관적인 전망치를 국민들께 말씀드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5%로 제시, 사실상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수출과 투자 전망은 더 어둡다. 정부는 내년 수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4.5% 줄어들 것으로 봤는데 이는 2020년 이후 다시 감소세로 접어드는 셈이다. 내년 메모리반도체 매출이 올해보다 17.0%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이 나오는 등 한국의 주력 품목 경기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다. 이 여파로 기업의 투자심리도 얼어붙어 내년 설비투자는 올해보다 2.8% 감소한다고 내다봤다.
경제 성장의 모든 축이 흔들린다는 전망에 정부는 내년 목표로 ‘위기 극복과 경제 재도약’을 내세웠다. 4대 기본 방향으로는 △거시 경제 안정 관리 △민생 경제 회복 지원 △민간 중심 활력 제고 △미래 대비 체질 개선을 제시했다. 먼저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부진 및 교역 위축, 전쟁 같은 지정학적 위험 등 피할 수 없는 대외 악재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거시 경제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한정된 재원으로는 서민·취약 계층 지원에 집중하고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기업 등 민간 파트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내년을 노동·교육·연금 개혁의 원년으로 삼아 ‘경제 재도약’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체질을 중장기적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구조 개혁에 나설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이날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신성장 4.0 전략’을 동시에 제시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반도체 등 전통적인 주력 품목 경기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새로운 먹거리 발굴을 위해 산업별로 맞춤형 전략을 마련해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정부는 “이외에도 금융·서비스·공공 분야 혁신, 인구 및 기후변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대응 여력을 확충해 경제 체질을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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