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는 여섯 살이었다. 유치원 선생님의 추천으로 ‘생의 제단’이란 연극에, 개에 물려 공수병으로 죽는 아이 역이었다. 극 중 아이 이름도 ‘혜자’였다. 마지막에 목이 말라 “물,물…”하면서 죽어가는 연기가 어찌나 실감이 났던지 관객들이 “혜자를 죽이지 말라”며 아우성이었다고 한다.
배우 김혜자가 자신의 연기 인생을 기록한 에세이 ‘생에 감사해’를 출간했다. 여섯 살의 첫 연극 기억까지 떠올렸으니 약 75년의 배우 생활을 되돌아 본 셈이다. 지난 2004년 첫 에세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이후 18년 만에 새 책이다.
책에서 김혜자는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이었다”고 회고한다. ‘연기 잘한다’는 대중의 찬사는 그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동력이 됐다. ‘국민 배우’라는 타이틀은 감사하지만, 자신을 연기에만 완벽주의자였고 엄마와 아내로서는 낙제점인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때는 껍데기만 남은 매미 허물처럼 산 사람이라 평가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김혜자는 자신을 잊고 배역에 몰입할 수 있음에, 대본을 외울 기억력이 있음에, 매번 해낼 작품이 눈앞에 놓임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1만70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