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자동차 선진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에서 누적 판매 1500만 대를 돌파했다. 1986년 소형 세단 ‘엑셀’을 미국에 처음 수출한 후 36년 만에 달성한 대기록이다. 고(故) 정주영 선대회장이 1967년 설립한 현대차는 ‘포니 정’으로 불린 고 정세영 사장의 개척기와 정몽구(MK) 명예회장의 ‘뚝심 경영’을 바탕으로 한 미국 현지 생산기를 거쳐 정의선(사진) 현 회장 시대에서 ‘글로벌 톱3’의 완성차 메이커로 거듭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현지 시간)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에 따르면 최근 뉴욕주 윌리엄스빌에 있는 딜러숍 ‘웨스트 허 현대(West Herr Hyundai)’에서 1500만 번째로 신차 투싼을 고객에게 인도했다고 밝혔다. 랜디 파커 HMA 최고경영자(CEO)는 “2022년 한 해의 마무리를 누적 판매 1500만 대라는 이정표로 장식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다. 1991년 미국 판매를 시작해 올 12월까지 353만 대가 판매됐다. 그다음으로는 쏘나타(314만 대), 싼타페(191만 대), 엑센트(136만 대), 투싼(134만 대) 순이다. 중소형 세단을 주로 판매했던 진출 초기와는 달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가운데 2개 모델(싼타페·투싼)이 판매량 ‘톱5’에 들어갔다. 판매 라인업이 다양해지면서 수익성이 개선됐고 한국 자동차 산업의 수출 역량까지 높였다. 2019년부터는 현대차의 대형 SUV ‘팰리세이드’까지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현대차의 미국 시장 진출은 1986년 1월 시작됐다. 울산 공장에서 생산한 소형 세단 엑셀을 미국에 수출하면서다. 현대차는 정세영 사장 시절(1967~1987년)에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기틀을 닦았다. 현대차는 국내 최초 국산차 모델인 ‘포니’를 개발했다. 1976년 현대차의 첫 해외수출인 포니의 에콰도르 진출도 이뤘다.
현대차의 미국 시장 공략은 ‘뚝심’으로 현지에 생산 공장을 착공한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됐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가 글로벌 완성차로 도약하려면 선진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 시장을 공략해야 하고 현지 생산 공장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미국 진출 20년째인 2005년 현대차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에 첫 생산 공장(HMMA)을 완공했다. 현대차는 최첨단 신기술과 공법을 적용해 건설한 HMMA를 발판 삼아 2007년 누적 판매 500만 대를 달성했다. 특히 HMMA는 높은 부품 현지화와 설계부터 판매·서비스까지 ‘메이드 인 바이 USA’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 수출 이후 누적 판매 500만 대를 달성하기까지 21년이 걸렸지만 이후 1000만 대까지는 8년 3개월(2015년 10월), 다시 1500만 대 돌파까지 7년 2개월 등 소요 기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
현대차는 이런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전기차를 앞세워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내연기관차 중심의 시장에서 ‘패스트 팔로어’였다면 전기차 분야에서는 ‘퍼스트 무버’가 되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지난해 12월 현지 판매를 시작한 아이오닉5는 올해 들어 2만 대 넘게 팔렸다. 코나 일렉트릭 역시 9000대 가까운 판매 실적을 올렸다.
정의선 회장은 아버지가 미국에 첫 생산 공장을 지었던 것처럼 미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구축한다. 올 10월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공식을 열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생산 시설 건설을 공식화했다. HMGMA는 1183만 ㎡ 부지에 연간 30만 대의 전기차를 양산할 수 있는 규모다.
내연기관 차량의 경우 중소형 세단을 주로 판매했던 미국 진출 초기와는 달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으로 차종을 다양화하고 있다. 현대차가 현재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은 총 13종에 이른다. 2002년 미국 판매 차량이 6종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10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파커 CEO는 “현대차는 미국에서 전기차 라인업과 생산 규모를 확대해나갈 것”이라며 “올해 놀라운 성과를 거둔 만큼 2023년과 그 이후에도 성장세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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