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실태 조사에 적극 팔을 걷어붙인 것은 지난 정부 때 국고 보조금 지급 규모가 폭증한 반면 사후 관리는 사실상 전무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탓이다. 대통령실은 전수조사 실시 전까지는 민간단체에 지원된 금액이 총 얼마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를 목표 시점으로 부처별 강도 높은 내부 감사를 실시한 뒤 결과에 따라 법적 조치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28일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민간단체 보조금 지원 현황을 전수조사해서 파악하고 그 토대 위에서 향후 개선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말했다. ‘왕수석’으로 불리는 이 수석이 수석비서관 임명 후 첫 언론 브리핑 주제로 보조금 투명성 강화를 들고나온 만큼 대통령실이 부정 수급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비영리단체 보조금 투명성 제고 추진’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민간단체에 지급한 보조금은 5조 4446억 원으로 2016년(3조 5571억 원)보다 1조 8875억 원 늘었다. 상승세는 문재인 정부 때 가팔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보조금 지급액은 3조 7325억 원이었는데 연평균 약 4005억 원씩 더해져 2021년에는 5조 3347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마저도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지원한 민간 보조금 사업 등은 제외한 수치라는 점에서 국고 보조금이 ‘깜깜이 회계’ 상태에 놓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각 시·도 교육청을 통해 민간에 지원한 금액, 각 공공기관이 민간단체에 지원한 금액도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수석은 “실제 단위 사업 형태로 지원된 단체 수는 시스템상 집계되지 않아서 정확한 파악이 어려웠다”며 “추측건대 아마도 10만여 개가 넘는 프로젝트로 지원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느 단체가 어떤 목적으로 얼마를 사용했는지조차 관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를 연 촛불중고생시민연대의 사례를 보고 보조금 구조 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촛불연대는 지난해 서울시에서 활동 보조금 총 5500만 원을 받아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이해 높이기’ 등 친북 성향 강연을 수차례 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해당 단체를 언급하며 “정부의 지원금이 도대체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그 집행 실태, 규모 등을 (조사)하다 보니 아무도 (보조금을)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더욱이 2016년 이후 사업 중 문제 적발 사례(153건·환수 금액 34억 원)가 전체 지원 규모에 비해 미미하고 당국이 파악하지 못한 각종 문제 사례가 언론이나 국정감사 등을 통해 밝혀진 데 따라 전면 감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 수석은 “부처에 3월까지 전부 자체적으로 점검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전 부처 실태 점검을 통해 목적 외 사용, 회계 부정 등의 문제가 추가로 적발될 경우 시정 조치 및 부정 수급액 환수 조치가 진행된다.
대통령실은 부정 적발 단체는 물론 관련 공무원의 업무 처리에 대해서도 수사 의뢰 가능성을 열어뒀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공무원의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는 당연히 조사될 수 있을 것”이라며 “사안에 따라서는 수사 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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