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산업생산이 다섯 달 만에 소폭 증가했지만 한국 경제의 주축인 반도체 생산이 두 자릿수 급감했다. 고물가 등에 소비 여력이 줄어 소매 판매도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수출과 내수 모두 고전하면서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하강 국면에 진입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1월 생산은 전월 대비 0.1% 증가했다.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1.0% 늘었지만 소매 판매는 1.8% 줄었다.
생산은 5개월 만에 상승 반전했지만 ‘반짝’ 증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생산 증가분 0.1% 중 공공행정의 기여도가 0.16%포인트로 가장 컸고, 제조업은 0.13%포인트, 건설업은 0.08%포인트에 그쳤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에 정부가 치료제와 백신 구입을 늘린 게 주 원인으로 제조업이 이끈 내실 있는 증가세가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반도체 부진이 우려된다. 지난달 반도체 생산은 전월 대비 11.0% 감소했고, 수출은 21.4% 급감했다. 반도체 생산 능력 대비 실제 생산 실적을 의미하는 가동률지수도 전월 대비 12.0%포인트 줄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세계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고 중국도 다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스마트폰 수요가 줄어 반도체 생산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소비마저 3개월 연속 감소, ‘연말 특수’는 실종되다시피 했다. 지난달 의복 등 준내구재는 전월 대비 5.9%, 가전제품은 1.4% 줄었다.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에 동절기 의류와 난방가전 판매가 모두 감소한 영향이다. 소매 판매와 함께 소비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서비스업 생산 실적도 부진하다. 예술·스포츠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 생산이 전월 대비 5.0% 줄었고 숙박 및 음식점업은 4.0% 감소했다. 숙박 및 음식점업의 감소 폭은 코로나19 대유행 여파가 있던 지난해 12월(-10.9%) 이후 가장 크다. 어 심의관은 “이태원 참사의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이 개선되며 자동차 기계 장비 위주로 투자는 늘었지만 이런 투자가 향후 제조업 경기를 호조로 이끌 동력이 되기는 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어 심의관은 “생산이 상승 전환했지만 지수 자체가 높은 수준이 아니라 제조업이 호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전(全)산업생산지수는 115.3으로 지난 2분기(117.1)와 3분기(117.6)보다 낮다. 그나마 설비투자가 1.0% 증가해 두 달 연속 올랐다.
경기동행·선행지수가 공히 하락한 것도 눈에 띈다. 현 경기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01.7로 7개월 만에 하락으로 돌아섰고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0으로 5개월 연속 내렸다.
정부는 신속한 재정 집행으로 경기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내년 상반기 중 재정을 역대 최고 수준인 65% 이상으로 신속히 집행할 것”이라며 “민생과 직결되는 일자리와 복지·물가 안정 사업은 중점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다음 주 중 재정 신속 집행 계획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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