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무역수지 적자가 472억 달러로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거뒀음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입액이 더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올해는 경기 전망이 어두운 데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대중(對中) 수출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어 무역적자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연간 및 12월 수출입 동향’을 통해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472억 3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46억 9000만 달러)까지 9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내면서 연간 적자 규모를 키웠다. 우리나라가 연간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낸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132억 6000만 달러)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6년(-206억 2000만 달러) 적자를 뛰어넘는 최대 규모다.
무역적자가 발생한 것은 지난해 연간 수출이 6839억 달러로 전년 대비 6.1% 늘어나는 동안 수입이 7312억 달러로 18.9%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입이 급증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유·가스·석탄 가격이 일제히 급등한 영향이다. 지난해 3대 에너지 수입 규모는 1908억 달러로 전체 수입의 26.1%를 차지했다. 여기에 알루미늄·구리 등 원·부자재와 의류·쇠고기 등 소비재도 수입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
대규모 무역적자로 2년 연속 사상 최대 수출 기록도 빛이 바랬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품목 외에도 신산업 품목 수출도 늘어나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 시장과 인도에서 최고 수출 실적을 내며 특정국 수출의존도를 낮추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문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과 맞물리면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수출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점이다. 수출은 10월(-5.8%)부터 11월(-14.0%), 12월(-9.4%)까지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지난달은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29.1%)를 포함해 디스플레이(-35.9%), 바이오헬스(-33.5%), 석유화학(-23.8%) 등 수출이 일제히 고꾸라졌다. 지역별로 살펴봐도 중국(-27.0%), 아세안(-16.8%), 일본(-10.3%) 등 주요 지역의 수출 감소세가 큰 폭으로 나타났다.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 대한 수출액은 7개월 연속 감소해 연간으로도 전년 대비 4.4% 줄었다.
미국 등 주요국의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는 만큼 올해 수출 전망은 더욱 어둡다. 정부는 올해 수출이 4.5%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행도 올해 상반기 수출이 3.7%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올해 수출이 플러스(+)를 달성하도록 모든 역량을 결집시키고 총력 지원할 계획이다. 신흥 시장과 자원 부국에 대한 맞춤형 지원으로 수출 시장 다변화를 촉진하고 원전, 방산, 해외 플랜트 수출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을 예정이다.
이날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에너지 인플레이션에 따른 수입 급증 등의 영향으로 큰 폭의 무역적자가 발생한 것은 우리 경제에 부담 요인”이라며 “10월 이후 수출도 감소하는 만큼 관련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날 신년사를 통해 “무역수지 적자에 대한 걱정이 많지만 이는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수입 증가에 주로 기인한다”며 “대외 여건이 회복되면 무역수지도 빠르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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