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역사 598년 만에 살아있음에도 자진 사임을 택한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해 12월 31일(현지시간) 95세로 선종했다. 베네딕토 16세 명예교황이 위독하다는 소식은 지난달 28일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기도 호소에 의해 처음 알려졌지만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베네딕토 16세의 본명은 요제프 라칭거. 가톨릭 신앙의 정통성을 수호해온 보수적 신학자로 유명하다. 1977년 뮌헨 대교구 교구장 추기경이 된 뒤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당시 교황이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발탁해 바티칸에 입성했다. 라칭거 추기경은 75세이던 2002년에 은퇴를 희망했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오히려 그를 추기경 회의 대표로 임명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이후 교황 선출 회의인 콘클라베에서 3분의 2를 득표하며 2005년 4월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다. 클레멘스 12세 이후 275년 만의 최고령 교황이자, 역사상 여덟 번째 독일인 교황이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세속주의에 맞서 가톨릭의 전통과 교리를 지키는 데 힘썼다. 동성애에 대해 “본질적인 도덕적 악”이라고 규정하는 등 보수적 발언과 행보를 보였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 부인한 가톨릭 주교를 복귀시킨 일, 은폐됐던 사제들의 성추문이 잇따라 불거지는 등 곤욕에 시달리기도 했다. 즉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문제로 더는 베드로의 직무를 수행할 힘이 없다”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1294년 첼레스티노 5세 이후 598년 만에 살아있는 교황이 자진 퇴임한 사례였고,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베네딕토 16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가 독일 뮌스터대 교수로 교회 쇄신에 관한 강의를 진행할 때 수강생 중 한 명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었다. 2006년 2월에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그해 11월에는 평화로운 수단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했다. 2007년 2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는 친서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재결함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비해 대중적 인기가 높지는 않았지만 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두 교황’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져 관심을 받았다. 영화는 사임을 결심한 베네딕토 16세와 교황청에 사직서를 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현 프란치스코 교황) 추기경의 관계를 그려냈다. 보수주의자와 개혁주의자라는 둘의 상반된 성향과 함께 피아노를 사랑한 고인의 인간미를 보여주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2007년 패션지 에스콰이어가 ‘베스트 드레서’ 중 한 명으로 선정할 정도로 멋쟁이였던 베네딕토 16세는 임기 내내 교황의 흰색 수단과 대비되는 빨간색 구두를 신었다. 한때 명품 브랜드 ‘프라다’ 논란이 일었고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교황의 붉은 신발은 역사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가톨릭 순교자가 흘린 피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다. 챙이 둥그런 교황의 붉은색 모자 ‘카펠로 로마노’도 착용했는데 이 같은 해션도 가톨릭 전통 복식을 되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분석됐다.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치해 2일부터 사흘간 추모객들에게 공개한다. 장례 미사는 1월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례한다. 명동대성당은 베네딕토 16세를 기리는 분향소를 마련했으며 주한교황대사관은 2일 공식 분향소를 설치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였던 거인을 잃은 슬픔에 잠긴 천주교인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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