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커머스 1호 상장사’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컬리가 상장을 중단하면서 오아시스·11번가·SSG닷컴 등 기업공개(IPO)를 준비중인 e커머스 기업들의 계획도 타격을 입게 됐다. 컬리는 일반적인 e커머스 업체들처럼 영업손실을 감수하고 매출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이번 상장 철회로 컬리처럼 ‘계획된 적자’로 거래·매출액 성장을 꾀하는 모델을 채택했던 다른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IPO를 강행하긴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1번가와 SSG닷컴 등은 상장 시기를 조율해왔으나 여전히 구체적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11번가는 국민연금·H&Q코리아·새마을금고로 구성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2018년 5000억 원을 투자받으면서 올 해 9월 말까지 상장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SSG닷컴은 2021년 10월 미래에셋증권(006800)과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지만 아직 뚜렷한 IPO 추진 움직임을 보이진 않고 있다.
당초 e커머스 기업들은 지난해 증시 입성 기대가 높았지만 작년 초부터 시작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기준 금리 인상으로 시중 이자율이 급등한 가운데 SK쉴더스·원스토어·현대오일뱅크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IPO 연기를 발표하는 등 공모주 투자 심리가 급랭하면서 e커머스 회사들의 상장 스케줄도 계속 미뤄져 왔다.
주요 e커머스 업체 중에선 오아시스만 지난달 29일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해 올 상반기 중 IPO를 완료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다만 오아시스도 IPO 과정에서 기대 이상의 몸값을 책정하기가 만만치 않은 형국이 됐다.
실제 컬리가 4일 몸값 급락에 결국 IPO 연기를 선언하면서 e커머스 업체들의 상장 추진 전략에도 ‘찬물’을 끼얹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e커머스 회사들이 IPO든 추가 투자 유치 등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사실이 컬리의 상장 연기를 통해 부각된 때문이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내년까진 e커머스 회사 전반적으로 추가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유통업계의 ‘제 살 깎아먹기’식 마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e커머스나 유관 산업 생태계에 속한 회사들은 IPO 과정에서 컬리의 실패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어 다닐것"이라고 예상했다.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는 오아시스를 제외하면 11번가와 SSG닷컴이 컬리처럼 ‘계획된 적자’ 전략을 취해온 것도 부담 요인이다. 11번가는 지난해 3분기 전년 동기보다 43% 늘어난 1899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액을 달성했지만, 영업손실은 364억 원을 기록해 적자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SSG닷컴 역시 지난해 7~9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 늘어난 4406억 원의 순매출을 보였지만 영업적자는 231억 원을 나타냈다. 금융투자업계는 ‘적자 성장기업’에 대해 최근 시중 금리가 급등하면서 기업 가치를 보수적이고 신중하게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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