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삼성전자(005930)의 반도체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다. 진 회장은 197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는데 당시 정부가 처음 도입한 국비 유학생에 선발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83년 실리콘밸리의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전에 KAIST는 그에게 교수 임용장을 보냈지만 진 회장은 현지에 좀 더 남아 현장 경험과 기술을 쌓기로 했다.
그는 “IBM에 입사해 좀 더 배운 뒤 귀국하겠다고 했지만 한국에서는 무조건 돌아오라고 하더라”면서 “모아둔 돈으로 국비 유학 비용을 모두 갚고 IBM에 들어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스탠퍼드에서 공부하고 앤디 그로브 같은 인물들을 만나면서 반도체의 미래를 확신하게 됐다”며 “고국에 돌아가는 건 당연하지만 미국에서 실질적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로브는 인텔을 창업하지는 않았어도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최고경영자(CEO)를 지내며 인텔을 세계 최대의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진 회장은 IBM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재직한 후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돼 실리콘 밸리에 좀 더 머물면서 4메가(M) D램 개발을 이끌었다. 1983년 ‘도쿄 선언’으로 반도체 사업 진출을 밝힌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진 회장을 영입해 그의 나이 35세에 곧장 임원을 달아준 데 대한 보답이었다.
진 회장은 약속대로 서울로 돌아와 1989년 16M D램 개발부터 2~3년에 한 번씩 세계 최초 D램 신제품을 출시·양산하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신화를 작성하고 1999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CEO로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린 그를 주목한 또 한 사람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진 회장은 2003년 2월 27일 청와대에서 온 전화를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일면식도 없던 노 대통령이 오전 11시쯤 전화를 하셨다.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분야에서 향후 10년간 먹고살 수 있는 산업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장님이 적임자라고 하니 맡아달라고 하더라.”
당시는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 청문 제도가 없어 진 회장은 전화를 받고 당일 오후 3시 청와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 임명장을 받고 5시에 취임식을 했는데 같은 날 삼성전자에 사표를 내야 할 만큼 속전속결로 장관 임명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그는 갑자기 내린 결단의 대가로 삼성전자에 받기로 한 스톡옵션 7만 주를 포기했다. 삼성전자가 2018년 주식을 50 대 1로 분할한 것을 고려하면 현 시가로 2000억 원이 넘는다.
진 회장에게 돌아보면 아쉽지 않으냐고 묻자 “스톡옵션이 내 소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 벌면 되지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정도 보상은 받았다”며 그는 담담히 말했다.
진 회장은 인터뷰 마지막에 청년 세대를 위한 교육 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제한 시간에 선다형 문제를 풀어 대학과 인생을 결정하는 한국의 교육 방식은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데 적합하지 않다”며 “실제 현실에서 마주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하는데 토론식 학습법과 시행착오를 통해 창의적 사고를 기를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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