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낀 하늘에 쌀쌀한 바람이 불던 이달 8일(현지 시간) 미국 중동부의 켄터키주. 이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루이빌에서 버스로 65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가량 들어가자 드넓은 부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블루오벌SK(BOSK) 켄터키’라고 적힌 팻말이 꽂힌 입구를 통과하니 크레인과 굴착기 등 각종 중장비들이 일렬로 들어서 있었다. 뼈대가 세워지기 시작한 건물 사이로 안전모를 쓴 작업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은 이곳에서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와 전기차 배터리 캠퍼스를 조성 중이다.
SK온과 포드는 북미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 아래 지난해 7월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출범시켰다. 양 사는 총 114억 달러(약 14조 원)를 투자해 배터리 공장 3개를 짓기로 했는데 이 중 2개가 이곳 미국 켄터키주 글렌데일에 들어선다. 나머지 한 개의 공장은 테네시주 스탠턴에 세워진다.
켄터키 캠퍼스는 블루오벌SK가 갖출 총 129GWh의 생산능력 중 3분의 2인 86GWh(43GWh 공장 2기)를 담당할 예정이다. 이는 미국 단일 부지 내 최대 생산 규모다. 105㎾h 배터리를 탑재한 포드의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을 약 82만 대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1공장은 완공되면 설비 안정화와 시운전, 제품 인증 과정을 거쳐 2025년에 배터리 셀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2공장은 2026년에 양산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작업자들이 이용하는 버기카를 타고 블루오벌SK 켄터키 현장을 둘러보니 부지 정지 작업과 건물 철골 공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5일 기공식을 열고 공식적인 첫걸음을 뗐지만 이날 본 1공장은 공사가 이미 꽤 진행된 상태였다. 캠퍼스의 주 건물이 될 공장은 32m에 달하는 높이로 골조를 갖추기 시작했고 외벽도 일부 설치를 시작했다. 공장 길이만 1㎞가 넘었다. 이곳에서 5개월 전부터 일하고 있다는 한 현지 노동자는 “워낙 대규모 공사다 보니 많은 인력이 필요해 각기 다른 지역에서 모였다”며 “대부분 3년 정도 예정하고 근처 숙소에서 머물며 근무 중”이라고 설명했다.
블루오벌SK의 프로젝트는 빠르게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 대응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양국에 경제적인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블루오벌SK 켄터키는 켄터키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민간 경제개발 프로젝트로 향후 5000명 이상의 인력을 고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켄터키 캠퍼스에는 1180평 규모의 ‘엘리자베스타운 커뮤니티&테크니컬 대학 블루오벌SK 교육센터’도 들어선다. 2024년에 문을 열 이 시설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작업 시뮬레이션이나 품질·제조 프로세스 등을 교육할 예정이다.
국내 배터리 생태계 확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켄터키 공장에 들어갈 각종 설비는 한국 업체들을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발주될 예정으로 한국의 고용 창출과 함께 2조 원가량의 경제 효과도 있을 것으로 SK온은 내다보고 있다. 현장에서 사업을 관리하는 신동윤 BOSK 사업관리부 디렉터는 “한국 장비 업체 참여 비중이 90%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협력 업체들이 간접적으로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 셈으로, 이를 통한 전후방 산업의 동반 성장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SK온은 해외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한국 장비 및 소재 업체들과의 동반 성장을 추구하는 데 집중해왔다. SK온은 미국 법인 자회사 SK배터리아메리카(SKBA)를 통해 조지아주 커머스시에 단독으로 운영하는 1·2공장에서도 한국 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을 중요시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9일 애틀랜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정준용 SKBA 법인장은 “현재 가동되고 있는 SKBA 제1공장에 들어간 장비의 95%가 한국 업체의 것”이라며 “공장이 사용하는 배터리 핵심 소재의 국산 비중도 약 80%에 달한다”고 말했다.
한편 SK온은 적극적인 북미 시장 공략을 통해 2025년 배터리 시장에서 ‘글로벌 톱3’ 진입을 노리고 있다. 북미에서만 2025년 최대 180GWh의 생산능력을 확보해 시장 지배력을 키워나간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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