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 업체인 TSMC가 경기 둔화와 매출 감소 전망에도 올해 연구개발(R&D) 비용을 20%나 늘리기로 했다. 대만 정부의 신속하고 화끈한 반도체 R&D 지원 정책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R&D 투자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 굴지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한국은 정쟁에 휘말려 반도체 지원 정책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TSMC의 전체 R&D 비용은 1632억 6200만 대만달러(약 6조 6953억 원)였다. 이 회사가 계획대로 R&D 비용을 20% 올린다면 올해는 1959억 1400만 대만달러(약 7조 9776억 원)를 지출하게 된다. SK하이닉스의 2021년 한 해 R&D 비용(4조 447억 원)의 두 배 가까운 금액이다.
TSMC의 계획은 시황 악화로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최대 5% 감소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 속에서 나와 주목된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2㎚(나노미터·10억분의 1m), 1.4㎚ 등 최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먼저 개발하기 위해 R&D 비용을 늘린다”고 설명했다.
TSMC의 거침없는 R&D 투자는 대만 정부가 속전속결로 단행한 반도체 법안 통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11월 자국 기술 기업들의 R&D 비용에 관한 세액공제율을 기존 15%에서 25%로 대폭 올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올해 1월 7일 법안이 발의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통과됐다. 대만 반도체 기업들은 경기 둔화에 대한 부담을 덜고 값비싼 장비나 고급 인력 활용에 만전을 기할 수 있게 됐다.
대만뿐 아니라 세계도 반도체 패권 확보를 위한 정책 마련에 한창이다. 일본은 현지에 TSMC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4조 5000억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유럽은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430억 유로(약 59조 원)를 투입한다.
그러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을 가진 한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은 오리무중이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 일명 ‘K칩스법’의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은 단 8%에 불과해 ‘반쪽짜리’ 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가 해당 세제 혜택을 15%로 올리는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정쟁에 막혀 통과가 요원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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