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도 황당했을 듯싶다. 조세특례제한법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을 복기하면 ‘어제는 세수 부족을 염려하다 오늘은 세금을 줄이지 않으면 반도체 산업의 앞길을 막는다’고 롤러코스터를 탄 격에 비유할 수 있다. 심지어 이 조직의 수장은 여당 현역 의원이다. 기획재정부 이야기다.
매 순간 치열한 생존경쟁에 놓인 기업 입장에서는 관료들의 이런 현실 인식에 힘이 빠졌을 것 같다. 세금을 좀 깎아준다고 생존경쟁에서 대단한 프리미엄이 붙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에 나가는 장수를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게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테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정기국회에서는 한국전력공사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2배에서 5배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한전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깜짝 놀란 여야가 같은 법안을 재상정해 20일 뒤 국회 관문을 넘었다지만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야당 의원이 아무리 발목을 잡아도 국민의힘 의원 50여 명이 모두 표결에 나섰다면 이런 참사에 가까운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아도 됐다.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는 말은 도처에서 넘쳐난다. 하지만 국정 운영의 책임을 진 여당을 보면 위기의식이 진짜인지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여소야대 정국이라고 거대 야당 핑계만 대면 끝나는 게 아닐진대 절박함도 보이지 않으니 가관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사태는 당권 경쟁에만 매몰된 나머지 국가의 미래는 뒷전인 정치권의 민낯을 보는 것 같은 낯 뜨거움마저 느껴진다.
시선을 해외로 돌리면 경쟁 국가들은 착착 합을 맞추는 모양새다. 대만 정부는 자국 기술 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에 관한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5%로 대폭 올리는 법안을 발의했고 7일 발의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 업체 TSMC는 전 세계적인 경제 둔화 전망에도 R&D 비용을 20% 늘리는 식으로 화답했다. 미국 역시 자국 기업에 혜택을 주는 반도체과학법·인플레이션감축법(IRA) 처리 과정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똘똘 뭉치고 공화당의 협조마저 얻어냈다. 우리만 스스로 우리 발목을 잡지 못해 안달이 났다. 여당마저 정신을 못 차리니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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