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국방부 업무 보고에서 ‘더 문제가 심각해지면’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자체 핵무장’ 방안을 처음 언급한 뒤 국내외에서 핵무장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휘락 전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1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과연 뉴욕을 포기하면서까지 서울을 지킬 것이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져봐야 한다”며 “현 상황에서 자체 핵무장은 필연적인 요구”라고 주장했다. 다만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시설을 갖추지 못한 현실을 거론하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10년, 100년이 걸려도 자력으로 핵무기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박 전 원장은 윤 대통령의 확고한 안보 의식을 높게 평가한 뒤 “북핵에 대한 우선순위가 여전히 낮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 무인기 대응 실패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군의 잘못”이라면서 “현재 군 수뇌부는 버티고(Vertigo·혼돈 상태)에 빠져 있다”고 질타했다.
-윤 대통령이 최근 자체 핵무장을 처음 언급했는데.
△북핵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이 상당히 빠르게 핵심을 파악하고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다.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과 기본적인 접근 방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현재 북핵 위협을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라고 인식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북핵을 막아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이 과연 뉴욕을 포기하면서까지 서울을 지킬 것이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져봐야 한다. 미국이 어떤 확약을 하든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핵무기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자체 핵무장이 가능한 상황인가.
△윤 대통령은 우리 과학기술로 이른 시일 안에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했고 일부 전문가는 2~3년 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10년, 100년이 걸려도 자력으로 핵무기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 핵무기를 갖는 게 어려운가.
△핵무기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다. 플루토늄이나 고농축 우라늄 두 가지 중에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재처리 공장도, 농축 공장도 갖고 있지 않다. 쉽게 말하자면 밥솥도 있고 밥 짓는 기술도 갖고 있지만 쌀이 없어 밥을 짓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국방과학연구소(ADD)나 한국원자력연구원에 핵 개발을 해본 경험을 가진 적이 있는 인력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의 안보 정책을 평가한다면.
△나름의 평가 기준을 만들어 전임 문재인 정부의 안보 정책에 대해 점수를 매겼더니 90점 만점에 21점이 나오더라. 이 정도면 안보 분야에서 거의 한 일이 없다는 얘기다. 같은 기준을 적용해보니 윤 정부는 63점으로 나왔다. 가장 중요한 게 대통령의 안보에 대한 인식인데 대통령이 바뀐 것 하나만으로도 안보가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안보 정책에서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가.
△북핵에 대한 우선순위가 여전히 낮다는 점이 안타깝다. 정권 출범 2년차인 지금쯤이면 안보실에 북핵 담당 특별팀이라든지 제3차장을 만들어 북핵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또 북핵 대응에 대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국가안보실과 국방부·국정원·행정안전부 등에 제대로 전달돼 실행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북핵 억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핵 억제 전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핵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망하지만 북한도 망하고 우리 한민족이 다 망한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 사용을 자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민족의 핵전쟁을 억제하는 전쟁을 해야 하며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국가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국방뿐 아니라 과학기술 정책도 북핵 억제 전쟁의 승리를 위해 유익한 쪽으로 발전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북핵 억제를 우리의 민족사적 과제로 인식하고 민족의 공멸을 막는 데 모든 역량을 총집결해야 한다.
-군 통수권자로서 윤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헌법 제66조 2항에는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돼 있다. 국가의 독립과 영토를 수호하라고 대통령에게 군 통수권자 지위가 부여된 것이다. 만약 군이 잘하고 있으면 격려만 해주면 되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강하게 질타해야 한다. ‘좁쌀영감’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군이 북핵 대응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요구해야 한다.
-핵 개발에 매달리는 북한 정권의 목표는 무엇인가.
△적화 통일이다. 북한은 이 목표를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 북한은 1952년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고 1960년대에 소련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를 받았고 1980년대에 영변 핵발전소를 완성했다. 이 모든 일이 1990년대 동구권 국가들이 무너지기 이전에 발생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 내부에서는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서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대단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말 북한 무인기가 서울 한복판에 침투한 것은 충격적이다.
△전적으로 군의 잘못이다. 문재인 정부를 탓할 수도 있겠지만 2017년에 북한 무인기의 침투가 있었다면 군이 완벽한 대비책을 마련해두고 있었어야 한다. 그때 군을 제대로 채찍질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실패가 반복되는 것이다.
-군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현재 군 수뇌부는 버티고(Vertigo)에 빠져 있다. 버티고는 공군 조종사가 육지와 바다를 혼동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지금 우리 군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기강이 해이해졌다.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군인이 많지 않다. 핵을 핵이라 부르지도 못했던 문 정부 때의 ‘홍길동전 군대’에서 탈피해야 한다.
-최근 국방부 업무 보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3축 체계’에만 너무 편중된 점이 아쉽다. 유사시 북한 핵·미사일을 선제 타격하는 ‘킬체인’과 북한이 쏜 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는 이미 실효성을 상실했다. 북한 미사일은 고체 연료를 사용할 수 있게 돼 선제 타격 자체가 어렵고 변형 탄도 궤도까지 갖춰 요격도 용이하지 않다. 3축 체계를 갖춘다고 북한의 핵무기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과 핵 위협에 대한 억제 태세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수시로 얘기해야 한다. 미군 잠수함이 동해안에서 활동하도록 하고 우리가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이라든지, 미국의 핵무기를 괌에 배치하고 중거리 미사일에 핵무장을 하는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미국 측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미국의 핵우산이 우리에게 확실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어떤 해법이 있을까.
△북핵 위협 때문에 한일 관계 개선은 꼭 필요하다. 특히 한일 군사 협력은 굳이 대통령이 앞장설 필요 없이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통해 북한 미사일 정보를 교환하는 실질적 협력을 적극적으로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본과의 실질적인 공조를 계속 강화함으로써 하부 구조의 협력이 상부 구조의 협력을 견인하는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어떻게 평가하나.
△전임 정부는 ‘아직 비핵화의 기회가 있다’고 주장하며 대북 유화 정책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에 핵전력을 증강할 기회만 제공해준 꼴이 됐다. 북한은 5년 동안 수소 폭탄을 개발하고 화성 15·16·17호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3000톤급 잠수함까지 만들었다. ‘외교적인 비핵화’라는 무모한 실험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9·19 남북군사합의는 어떻게 해야 할까.
△9·19 군사합의 결과 철원 지역에서 공동 유해 발굴을 위해 12m 폭에 1.9㎞ 길이의 도로를 개설했고 김포에서는 중립수역 항행을 추진하기로 하고 한강 하구에 대한 정보를 북한에 제공했다. 이로써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철원과 김포를 통한 포위 작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군사합의로 인해 취약해진 서울 방어 능력부터 속히 회복해야 한다. 다만 군사합의를 파기해 북한에 도발의 명분을 주기보다는 북한의 합의 위배에 대응해 우리도 합의에 구애받지 말고 정찰 반경을 확대하고 휴전선 인근 훈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He is…
1956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상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육사 34기로 임관해 대대장·연대장 등을 지냈고 주요 정책 부서에서도 근무했다. 육군대학과 합동참모대학을 수석 졸업했고 연세대와 미국국방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김대중 정부 당시 국방부 대북정책과장 재직 시절 ‘햇볕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돼 한직에서 머물다가 대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경기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민대에서 교수를 거쳐 정치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북핵 외통수’ ‘비핵화 협상:위험한 실험’ 등 북핵 관련 저서 20여 권을 출간했다. 현재 싱크탱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북핵대응연구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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