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한파에 결국 SK하이닉스(000660)가 ‘감산 카드’를 꺼내들었다. SK하이닉스 외에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도 감산, 설비투자 등에 잇따라 나서면서 고육책에 나설 계획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유일한 해외 D램 생산 기지인 중국 우시 공장의 반도체 생산량을 10~20% 가량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우시 공장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19만 장의 생산 능력을 가진 곳으로, SK하이닉스 전체 D램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SK하이닉스의 감산 결정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보기술(IT) 시장 한파가 거세지면서 재고가 대폭 불어나 공급량을 조절할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금리와 물가 상승으로 전방 산업이 불황을 겪자 SK하이닉스의 주력인 메모리 사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 ‘선(先) 생산 후(後) 판매’ 방식을 택하는 메모리반도체 특성상 글로벌 IT 기기 수요 악화가 재고 증가로 고스란히 이어지자 칩 제조사가 감당하기 힘든 초과 공급 현상에 직면한 것이다. 심각한 시장 불황 속에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10년 만에 영업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의 감산 실행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시장 수요 급감에 따라 수익성 낮은 제품들을 중심으로 웨이퍼 투입을 재검토하고 있다”며 감산 가능성을 시사했다. 레거시(구형) 제품 위주의 우시 공장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수요 위축에 대응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2021년 4분기 대비 42%나 감소한 108억 118만 달러(약 13조 3470억 원)를 기록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재고 수준은 20주(약 5개월)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한참 넘어서면서 메모리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SK하이닉스의 결정을 시작으로 글로벌 반도체 업체의 감산이 속속 이어질 전망이다. D램 3위 업체인 마이크론은 웨이퍼 투입량을 지난해보다 20% 줄이기로 결정했다. 일본 낸드플래시 업체 기옥시아는 지난해 10월부터 웨이퍼 투입량을 기존 대비 30%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또 기옥시아와 함께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미국 웨스턴디지털이 낸드 설비 투자를 20% 축소한다고 선언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감산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005930) 역시 사상 초유의 메모리반도체 불황으로 생산량 조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메모리 빙하기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지난해 11월 낸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세계 D램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5.8% 줄어든 611억9200만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트렌드포스 측은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은 지난해보다 13.6% 줄어든 527억 21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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