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용 부품 제조업체 삼기(122350)이브이(삼기EV)가 코스닥 상장을 위해 진행한 기관 수요예측에서 40 대 1에 못 미치는 경쟁률로 공모가를 희망가보다 20% 이상 낮은 수준에 결정했다.
연초 들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100% 신주 발행’ 및 ‘시가총액 1000억 원 이하 소형주’를 선호하는 현상이 굳어지고 있는 가운데, 40%의 구주매출 비율과 2000억 원대의 목표 시총을 내세운 삼기EV가 기관투자가들의 이목을 끌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기EV는 지난 17~18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실시한 결과 공모가를 1만 1000원에 결정했다고 지난 20일 공시했다. 이는 삼기EV가 처음에 밝혔던 희망 공모가 1만 3800~1만 6500원보다 20~33% 낮은 수준이다.
삼기EV는 국내 1위 2차전지용 엔드플레이트 제조업체다. 엔드플레이트는 2차전지를 보호하는 데 쓰이는 외장재 부품이다. 회사 측에선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과 2차전지 산업 성장을 강조하며 투자설명(IR)에 나섰다. IPO 시장에서 덜 부담스러워하는 소재·부품·장비 관련 업체라는 점도 긍정적인 대목이었다.
그러나 실제 수요예측에선 807곳의 기관이 참여해 37.5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응찰 기관 중 89.8%(725곳)가 희망가를 밑도는 가격을 써냈는데, 그만큼 시장에서 삼기EV 측이 제시한 목표 공모가가 현 시장 상황 대비 너무 높다는 의견이 강했다는 방증이다. 삼기EV는 대표 주관사인 대신증권(003540)을 통해 오는 25~26일 일반 청약을 실시한다.
삼기EV의 수요예측 부진은 최근의 ‘소형 공모주 쏠림’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수요예측에서 희망가 상단에 가격을 결정했던 종목들을 보면 한주라이트메탈(198940)(공모가 기준 시총 603억 원)이나 스튜디오미르(1004억 원)처럼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많았다. 소형주는 상장 직후 매도 물량이 비교적 작은 편이라 최근과 같은 증시 침체 국면에서 대형주보다 좋은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시총이 2000억 원 이상 되는 업체들은 더 이상 ‘안정적인 소형 공모주’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4000억 원 수준의 목표 시총을 제시했던 티이엠씨(425040)는 수요예측에서 31 대 1의 경쟁률로 공모가를 희망가 하단보다 12.5% 낮은 2만 8000원에 결정하기도 했다. 삼기EV도 1971억~2356억 원의 희망 시총을 제시해 올해 1월 IPO에 나서는 회사들 중 티이엠씨 다음으로 기대 기업 가치가 높았다.
삼기EV의 수요예측을 통해 ‘구주매출 있는 공모주’를 기피하는 현상이 재확인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기EV는 전체 공모 규모 중 40%를 최대주주인 삼기의 구주매출 물량으로 꾸렸다. 지난해 1월 전체 공모 물량 중 75%를 구주매출로 꾸린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을 철회한 것을 시작으로 IPO 시장에선 구주매출 비중이 높은 공모주에 투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 증권사의 IPO 담당자는 “일단 구주매출이 있는 상장 딜은 난이도가 높다고 보고 접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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