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떠난 러시아 시장을 중국 완성차 기업들이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기업들의 공세에 국내 기업들도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유럽기업협회(AEB)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005380)·기아(000270)의 러시아 자동차 시장 합산 점유율이 22.6%에서 17.8%로 줄었다. 반면 중국 제조사들의 합산 점유율은 17.9%로 전년(6.9%)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러시아 1위였던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을 넘어섰다. 지난해 러시아의 전체 자동차 시장 규모(68만 대)가 1년 만에 반 토막 난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 영향력을 크게 늘렸다.
러시아 시장에는 치루이·창청·지리·창안·디이(제일)자동차 등 다수의 중국 제조사가 진출해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에 맥을 못추던 중국 제조사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시장 적극 공략에 나섰다. 제너럴모터스(GM)·폭스바겐·르노·메르세데스벤츠·도요타·닛산 등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 사업을 철수 또는 축소한 가운데 빈 자리를 빠르게 메웠다.
현대차 역시 지난해 3월부터 러시아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재고가 소진된 8월 이후에는 단 한 대의 차도 팔지 못했다. 현재는 러시아 딜러사가 병행 수입한 차량만 일부 판매되는 상황이다. 시장점유율에서 2위와 3위였던 기아와 현대차는 결국 지난해 12월 순위권 밖까지 밀렸다.
타스 통신 등 현지 외신은 각 제조사가 공식 판매한 물량만 집계하면 중국 업계의 시장점유율이 30%를 넘어선다고 추산했다.
중국 기업들은 이번 기회에 러시아 내 기반 시설까지 적극 확보하면서 러시아 시장 장악력을 공고히 하려는 모습이다. 디이자동차는 닛산이 사용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인수해 재가동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닛산은 전쟁이 시작되자 1유로(약 1339원)만 받고 모든 생산·연구시설을 러시아 정부에 넘기며 현지 시장에서 철수했다.
현대차·기아를 위탁 생산하던 러시아 기업 아브토토르는 베이징자동차그룹(BAIC) 등 중국 제조사의 차량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현지 생산 역량을 확보한 중국 제조사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유럽과 중앙아시아 등 인접한 시장 공략에 나설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러시아 공장 가동을 중단한 뒤 추가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은 채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상태다. 러시아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쉽사리 철수를 결정할 수 없어서다.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준공된 러시아 공장은 2021년에 차량 23만 대를 만들어내며 전체 현대차 해외 공장 생산량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주요국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상황에서 현대차만 먼저 현지 생산과 판매를 재개하기도 어렵다.
전쟁이 끝난 뒤 공장 가동과 현지 판매를 재개한다 해도 이미 선점 당한 시장을 되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제조사뿐 아니라 아브토바즈 라다 등 러시아 기업도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판매량을 높여가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까지 보유한 중국 제조사와 다시 경쟁을 벌이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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