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 안팎에서 기금 증액 카드가 거론되고 있다. 이미 책정해둔 예산만으로는 경기 침체의 골을 넘기 쉽지 않은 만큼 당장 가용한 기금을 늘려 반등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25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재정 담당 부서는 동원 가능한 기금과 유휴 국유재산 등을 정리한 보고서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최근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예산을 쓰지 않고도 재정지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망라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예산을 편성할 때 예상한 것보다 올해 경기가 더 안 좋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연초부터 예산을 늘려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정부가 쓸 수 있는 다른 수단을 두루 살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당국이 기금 증액을 위한 사전 작업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국가재정법상 기금은 예산과 달리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지출 금액의 20% 범위 안에서 씀씀이를 조절할 수 있어 대형 경제 위기가 닥칠 때면 당국은 운용 계획을 바꿔 기금을 늘리고는 했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가 이어진 2012년 중소기업진흥기금 등을 늘려 2조 3000억 원가량의 재원을 마련한 일이 대표적이다.
기금 증액안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올해 예산을 책정할 때와 달리 국내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올해 예산안을 짤 때만 해도 올 실질 성장률이 2.5%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최근 1.6%로 전망치를 크게 낮췄다. 경기 방어를 위해 필요한 재정 수요가 그만큼 더 커졌다는 의미다. 당국이 최근 상반기 재정 투입 규모를 사상 최대 폭으로 늘리겠다고 예고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일이다. 정부는 올해 총지출 기준 예산 639조 원 중 역대 최대 수준인 60% 이상을 상반기에 쏟아붓기로 했다.
정부 지출을 늘리기 위해 기금 증액 대신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방법도 있지만 당국은 이에 선을 긋고 있다. 추경을 위해서는 국회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협의 과정에서 지출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야당은 소득 하위 80%가구에 지원금을 주자며 대규모 추경을 요구하고 있는데 총 규모가 30조 원에 달한다. 협의 과정이 길어지면 재정 투입 적기를 놓칠 수 있는 점도 문제다. 추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추경 편성 문제를 두고 “현재로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국의 한 인사는 “지난 정부에서 나랏돈을 방만하게 썼다고 비판했는데 이제와 추경 카드를 꺼낼 수 있겠느냐”며 “필요하면 기금을 늘려 잡을 수 있겠지만 경기 침체 폭을 지켜본 뒤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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