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출연을 제안 받았을 때, ‘왜 정이 역할에 나일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정이’를 SF액션의 요소가 두드러지게 만들었다면, 주인공에게 강인한 전사의 이미지만 내려고 했다면 다른 배우가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감정적 부분이 연상호 감독에게는 더 중요하지 않았나, 거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배우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공개 3일 만에 전 세계 193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서 배우 김현주가 연기한 전투 인공지능(AI) 정이는 일반적인 기계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실체는 최정예 용병의 뇌를 복제해 만든 로봇이지만, 후반부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한 정이의 얼굴 표정에서조차 배우의 숨결이 들어간 듯 감정이 느껴진다. 김현주는 25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정이’에서 연기에 대해 “후반부 100% 기계의 외양을 했을 때조차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데 신경을 썼다”며 이같이 말했다. 로봇을 CG로 만들 때 실제 자신의 얼굴을 따서 만들었는데, 그는 “실제로 영화를 보니 내 표정이 살아 있어서 놀라웠다”고 돌아봤다. 로봇에 감정을 실어서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는 연 감독에게 그는 애니메이션 ‘월-E’의 깡통 로봇도 눈빛에서 감정을 볼 수 있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용기도 주기도 했다.
‘정이’는 김현주에게 여러 모로 새로운 도전이었다. 애초 SF물 출연부터가 이번이 처음으로, 그간 했던 사람 사이 눈을 마주보며 감정을 주고받는 연기와 SF물의 연기는 처음부터 달랐다. 그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상상 속에서 연기하는 일이 처음부터 어려웠다”며 “연기하다가도 ‘내가 잘하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액션은 전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일부 선보였지만, 이번에는 연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원래 격투기를 즐겨 보는 김현주지만, 몸으로 직접 하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는 “액션연기를 연습한 경험이 적었기에, 신선하고 재미있었다”며 “젊어서부터 이런 역할을 했다면 ‘정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이’는 공개 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넷플릭스 영화부문 1위를 나흘째 지키고 있다. 김현주는 해외에서 인기에 대해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쁜 마음”이라며 “한국적 감성이 해외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고 이색적이지 않았을까 한다”고 해석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 있는데, 그는 “억울한 건 없다. 어떤 반응이든 나올 수 있다”면서도 “신파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저는 오히려 절제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영화는 고(故) 강수연의 유작이기도 하다. 강수연과 마지막으로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이 촬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다는 김현주는 강수연에 대해 “감히 뭐라 말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다”며 “시사회에서 스크린으로 보는 선배님은 멋있었다. ‘진짜 영화배우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앞으로 되고 싶은 모습도 생전의 강수연처럼 “다 품어주고 들어줄 수 있는 선배, 어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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