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 전체 의원의 40%가 참여하는 초대형 의원모임이 출범했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 ‘민의(民意)’를 가장 잘 수렴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다.
대립과 혐오를 극복하고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 시대착오적 정치를 끝내기 위해 모인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출범식을 개최했다. 정당과 정파, 선수와 지역을 뛰어넘은 여야 의원 120명이 의원모임에 합류했다.
출범식에는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해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이 참석하며 이들의 정치개혁 의지에 힘을 실어줬다.
김 의장은 인사말에서 “제가 아는 한 정치개혁을 위해 여야가 선수와 지역에 관계없이 이렇게 많은 의원이 함께 모인 것은 처음”이라며 “내년 총선이 갈등을 줄이고 표의 비례성 높이는 더 나은 제도로 치러지면 국민들도 그때부터는 정치권을 신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복수의 개정안을 합의하면 3월 한 달 동안 국회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를 매주 2회 이상 열겠다”며 “집중심의 과정을 거치면 3월 안에 선거제도 개혁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전쟁 후 70년을 총결산하고 새로운 70년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가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한다”며 “선거제도와 권력구조 개편은 정치인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재명 대표 또한 “대표성과 비례성이 제대로 보장되고 지역주의가 해소되는 제대로 된 정치체제를 만드는 일은 정치인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무”라고 밝혔다. 이정미 대표도 “승자독식의 폐해를 인식하고 비례성·대표성·다양성 원칙만 합의하면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행 헌법이 적용된 1988년 이후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정치개혁을 위해 모인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그간 정치개혁 논의는 20명 내외가 모인 정개특위를 통한 뒤 여야 원내지도부 간 협상을 통해 진행됐기 때문이다. 15대 국회(16대 총선 적용)의 의원 수 감축, 16대 국회(17대 총선 적용)의 정치자금법 개정 작업 등이 이러한 절차를 통해 진행됐다.
이번 의원모임의 최우선 과제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손질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20대 국회에서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패스트트랙을 통해 통과된 선거제도지만 위성정당의 탄생이라는 문제점을 드러낸 바 있다.
의원모임은 출범선언문을 통해 “사표를 최소화하고 국민의 표심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민주적 선거제도를 만들겠다”며 “국민 최대 다수가 찬성할 수 있는 정치개혁안을 도출하기 위해 당리당략에 구애되지 않고 여야가 허심탄회하게 원점에서부터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의원모임은 매주 월요일마다 만나 공개 토론회 등의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120명의 의원이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를 모으면서 동력이 헌법 개정(개헌)까지 이어질 지도 관심이 모인다. 이른바 ‘87년 체제’ 이후 내각제부터 4년 중임제 원 포인트 개헌까지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김 의장은 “정치개혁을 시작으로 우리 시대의 해묵은 과제인 개헌까지 완수해주길 부탁한다. 모든 걸 걸고 쏟아 부어 만들어보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21대 국회에선 이재명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하면서 다시 정치개혁 화두로 떠오른 상태다. 이정미 대표는 대통령 결선투표제 개헌을 언급했다.
우선 민주당은 21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낸 윤호중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당내 개헌특위를 중심으로 오는 3월까지 민주당 개헌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2018년 발표됐던 민주당 개헌안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청와대 개헌안을 참고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개헌에 앞서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 행사를 제외하는 국민투표법 조항 개정이 우선돼야 하지만 2014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정 이후 개정 시한인 20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정 논의는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개헌 논의 전에 국민투표법 개정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당 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풀어야 하는 점도 넘어야 할 산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도 △권력구조 개편 △국민 기본권 강화 △지방분권 등의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발표했지만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 설득에 실패하며 불발됐다.
이 때문에 개헌의 속도조절론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진석 위원장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하면서 언급한 말을 인용하며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하려고 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 있다.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고 시급한 과제만 집중하자”고 밝혔다.
2018년 당시 개헌안 작업에 참여했던 민주당 중진 의원도 서울경제와 통화에서 “개헌 화두를 던져 국민적 논의를 진행한 뒤 핵심 내용은 여야가 총선 공약으로 내걸 수 있다”며 “이후 나머지 부분들은 합의를 통해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정상훈 기자 sesang2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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