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글로벌 투자자의 국내 외환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외국 금융기관의 직접 참여를 허용하고 개장 시간을 새벽 2시까지 연장하는 등 전면적인 외환시장 개편 방안을 공개했다. 외환 거래가 활발해지면 해외 투기 세력이나 국민연금 등 일부 주체의 움직임만으로 환율이 출렁이는 것을 막고 원화 자산에 대한 투자도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외환시장이 이 정도 규모로 대폭 개편되는 것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1997년 이후 약 25년 만이다. ★본지 1월 13일자 1·8면 참조
7일 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글로벌 수준의 시장 접근성 제고를 위한 외환시장 구조 개선 방안’을 밝혔다. 이날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은 외환을 나라 안팎의 자본이 움직이는 길에 비유하면서 “과거 외환위기에 대한 트라우마로 시장 안정을 최우선하면서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구조를 계속 유지해왔다”며 “나라 밖과 연결되는 수십 년 된 낡은 2차선 비포장도로를 4차선의 매끄러운 포장도로로 확장하고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개선 방안의 핵심은 인가를 받은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RFI)에 국내 외환시장 직접 참여를 허용하고 개장 시간을 오후 3시 30분에서 새벽 2시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현재 원화는 역외 외환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는 데다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은 도매시장인 국내 은행 간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없다. 거래 시간도 제한돼 국내 투자하려는 외국인이나 해외 투자하는 내국인 모두 불편을 겪어왔다. 외환시장을 개방·경쟁적인 구조로 바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는 동시에 원화 자산에 대한 투자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이나 조선사 등 일부 주체로 인한 쏠림 현상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선박 수주 호황기에 조선사의 선물환 매도가 늘어나거나 국민연금 등 일부 기관들이 해외 투자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 환전하는 과정에서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거래 규모가 늘면 다양한 시장 참가자들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또 역외 거래가 막혀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이 기형적으로 성장했는데 국내 시장 접근성이 개선되면 NDF에 국내 현물환 시장이 영향받는 이른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RFI에 대한 법령상 규율 등을 정립하기 위해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 등 절차를 거쳐 3분기 중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이후 외국 금융기관의 참여 의향 등 수요 조사를 바탕으로 6개월간 시범 운영을 거친 뒤 2024년 7월부터 정식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개선 방안의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정부 기대만큼 효과가 나타날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운영협의회 세미나’에서 이성희 국민은행 채권운용본부장은 “RFI가 현물환 수요를 흡수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엄격한 의무 이행 확약을 해야 한다면 NDF를 계속하겠다는 반응도 있다”고 말했다. 문영선 하나은행 외환파생상품운용섹션장은 “야간 시장을 열었는데 RFI가 활발하게 들어오지 않으면 시장에 유동성은 없고 호가 스프레드가 벌어지게 되면서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쏠림 현상이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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