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빅테크 기업들의 감원 바람이 국내 반도체 업계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반도체 한파’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가운데 감원에 나선 외국 기업의 한국 법인 또한 인력 구조 조정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램리서치 한국 법인은 최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중이다. 램리서치 한국 지사의 총 임직원은 700명 수준. 정확한 희망퇴직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회사는 조만간 이 작업을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인력 감축이 ‘예고된 수순’이었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램리서치의 팀 아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022년도 4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세계 곳곳에서 근무 중인 램리서치 임직원 수를 1300명 정도 감축할 계획”이라며 “전체 인원의 약 7%에 해당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램리서치 본사의 방침이 회사의 각종 제조 시설과 연구 시설을 갖춘 한국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램리서치는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톱 4’로 꼽히는 회사다. 매출 규모도 연간 20조 원 이상에 달하는 빅테크 기업이다.
이 회사가 한국 인력 감축에 나선 것은 급격한 반도체 시황 악화 때문이다. 최근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등으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각종 기기 안에 탑재되는 반도체 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국내 대표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005930)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6.94% 하락한 2700억 원을 기록했고 SK하이닉스(000660)는 같은 기간 동안 10년 만에 1조 7012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기존 설비투자의 50% 이상을 축소하기로 방침을 정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투자를 축소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증축 지연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글로벌 유력 칩 제조사들은 설비투자 축소는 물론 인력 감축까지 나서면서 비용 절감에 나서는 모습이다. 미국 인텔은 지난해 10월 인력 감축을 공식화했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전체 인원의 20%에 준하는 감원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역시 비용 절감을 이유로 인력의 10%를 감축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칩 제조사들이 뼈를 깎는 운영 비용 절감에 들어가자 이들에 장비를 공급하는 램리서치 등 장비 회사들도 유탄을 맞았다. 한파를 견디다 못해 결국 인력 감축을 선택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업계 불황 여파로 향후 국내 반도체 업계 곳곳에서 인력 감원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특히 국내 소부장 업체는 고급 인력이 높은 급여를 주는 외산 장비사로 이동하는 고질적 문제와 함께 업황 악화까지 겹쳐 인력 관리가 만만찮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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