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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 개미 업고 경영까지 간섭…방패 없는 기업들 속수무책 휘둘려

"기업가치 제고" 소액주주 호응

주총 앞두고 표 대결 으름장에

기업 배당 늘리고 자사주 소각

재계 "경영권 지킬 수단 필요"


국내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이 날이 갈수록 매워지고 있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린다는 명분으로 소액주주들의 호응까지 얻는 모양새다. 반면 기업들은 마땅한 경영권 방패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행동주의 펀드의 특성상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해칠 수 있다며 방어 장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 간섭이 도를 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이사회와 손잡고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강성부펀드(KCGI)는 오스템임플란트에 경영권 매각을 압박해 공개 매수를 이끌어냈다. KCGI 측은 “과거 오스템임플란트는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이사회와 대주주 중심의 독단적 경영의 한계에 노출돼 있었다”며 “글로벌 사모펀드 중심의 전문 경영인 체제로의 변화는 한층 진일보한 지배구조 개선”이라고 평가했다. 태광산업·BYC를 상대로 주주 활동을 벌여온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대변할 이사진을 파견할 계획”이라며 “이들 기업에 상장사 최저 수준인 배당과 유동성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펀드들이 연합해 기업을 겨냥하기도 한다.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은 KT&G를 상대로 KGC인삼공사의 분리 상장과 주주 환원 확대, 사외이사 추천 등을 요구해왔으나 KT&G가 거부함에 따라 양측의 충돌은 격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의결권 조사 기관인 인사이티아에 따르면 국내 행동주의 대상 기업 수는 2017년 3개에서 2020년 10개, 2021년 27개, 그리고 지난해 47개로 빠르게 증가했다.

국내 기업들은 이 같은 공격에 사실상 꼼짝없이 당하고 있다. 금융권을 비롯해 제조업과 패션 업계에서도 배당금 확대 및 자사주 소각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고금리의 여파에도 여론을 의식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주주 환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금융지주들이 대표적이다. 우리금융은 자사주 매입·소각을 포함해 총주주환원율 30% 수준을 매년 실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3월 정기 주주총회를 거쳐 올해 처음으로 분기 배당도 할 예정이다. 하나금융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지난해 배당 성향을 27%로 결정하고 연내 15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달 3일 발행 주식 수 1%에 해당하는 3154억 원 상당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기아는 기말 배당금을 전년 대비 16.7% 높인 3500원으로 책정해 주주가치를 높이고 이익을 환원하기로 했다. 또 향후 5년간 최대 2조 5000억 원 규모로 중장기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자사주 매입분의 50%를 소각해 주주가치를 제고해나갈 방침이다.



이 같은 추세는 국내 상장사들이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후진적 지배구조와 계열사 편법 지원, 내부 회계 부정, 쥐꼬리 배당으로 일반 주주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행동주의 펀드들은 이제 과거 ‘먹튀’ 자본의 이미지를 지우고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의 첨병’으로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는 경영 간섭 과정에서 주가가 단기 상승하면 보유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챙겨 빠져나가는 만큼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 기업 입장에서는 큰 리스크가 될 수밖에 없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많이 요구하는 배당 확대도 단기적으로 주가를 올릴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투자 여력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성장 잠재력은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는 ‘창이 있는 만큼 방패도 있어야 한다’며 제도적 장치 마련을 주장한다. 해외 주요 선진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는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제도 등을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제도다. 미국·일본·프랑스·캐나다 등 선진 자본시장에는 이미 널리 보급돼 있다. 주식 1주에 복수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차등의결권 주식도 대표적인 경영권 보호 장치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펀드 등 주주 활동은 점차 활발해지고 있으나 한국 시장은 해외와 비교해 제도가 균형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다”며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제도 도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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